
세계지식포럼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먹거리 산업을 ‘ABCDE’라는 키워드로 제시했다. AI, Bio, Contents, Defense, Energy 산업을 줄여 향후 우리 경제와 산업이 지향할 미래의 타깃으로 설정한 듯하다. 다양한 논의 속에서 나는 문득 “오늘 이 시대 한국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포럼에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야말로 이 시대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힘이라고 강조하며, 한국의 복원경쟁력을 높이 평가했다.
되돌아보면, 오늘의 우리를 먹여 살려온 자동차·조선·전자·철강 산업이 있기까지 스며들었던 시대정신은 ‘스피드’였던 것 같다. ‘빨리빨리’라는 속도의식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울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철저히 훈련된 인력과 사회시스템, 즉 규율(Discipline)을 당연시했던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되었다. 공장에서 맨손체조를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다소 엄격한 관리와 규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태도는 분명 당시의 시대정신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한국을 만든 정신은 지금 당장, 그리고 일사불란한 규율이 아니었을까?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의 혁신과 압축 성장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다르다.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 도전에 선구자적으로 대응하고, ABCDE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워내기 위해서는 과거 시대정신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에게 주어진 도전과 과제에 대응하는 태도(Attitude)를 새롭게 재설정하고 재부팅해야 한다. 지금까지 축적해온 속도의 경험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겸비해야 할 때다.
앞에서도 적시한 회복탄력성은 분명 미래 한국의 시대정신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작금의 글로벌 변동성과 변화무쌍한 지경학적 위협이 갈수록 심화되는 가운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복원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시대정신은 ‘개방성(Openness)’ 내지 ‘다양성(Diversity)’이다. 우리는 여전히 국내 중심적 사고에 머물러있고, 글로벌 어젠다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태도가 지배적인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다음으로 ‘협력(Collaboration)’과 ‘파트너십(Partnership)’이다. 무정형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는 지금 당장 성급히 결정해 나가기보다 섬세한 길찾기(navigating) 내지 미세조정(fine-tuning)을 통해 솔루션을 찾아야 한다. 기후위기는 어느 한 나라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가까이는 일본·중국, 더 나아가 아시아 전체, 그리고 선진국·개도국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 모두가 함께해야 할 글로벌 어젠다이다. ABCDE 산업 또한 국내 협력과 파트너십 모델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서울은 이미 아시아의 중요한 산업 클러스터이자 비즈니스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베이징·상하이·선전 등 지역내총생산(RGDP)이 3만 달러에 이르는 중국 3대 비즈니스 축도 이러한 혁신 클러스터와 글로벌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다. 물론 일본 도쿄도 이러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여기에 우리가 부산을 중심으로 한반도 동남권을 새로운 산업 클러스터와 비즈니스 허브로 키우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내 협력 파트너십만으로는 아시아의 새로운 글로벌 비즈니스 축으로 부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지역도 포괄할 경우 한·일 통합의 아시아 신규 비즈니스 허브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부산과 오사카 경제권을 하나의 동남권 산업 클러스터와 비즈니스 중심 축으로 만들 수 있다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새로운 성장 거점을 확보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한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협력과 파트너십이며, 특히 우리뿐 아니라 일본과의 협력된 파트너십은 선택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긴요하다고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