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이통시장 경쟁 활성화 방안 무엇이 문제인가

입력 2009-08-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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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이선화 한경연 부연구위원
이동통신 요금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OECD의 통신부문 보고서가 발단이 됐다. 30개 회원국 간 이동통신요금을 비교한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07년 대비 2009년의 한국의 이동통신 요금은 조사대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토대로 소비자단체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대한 요금인가제가 실효성 있게 집행돼야 한다거나, 현재와 같은 10초 단위가 아닌 1초 단위로 과금체계를 바꾸어야 한다거나 하는 요구사항을 내걸고 정책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에 방통위 측은 처음에는 "지속적으로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추진하겠다"며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을 통한 가격인하를 염두에 둔 듯한 대응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지난 20일에 개최된 '이동통신 요금현황 및 향후 정책방안' 세미나에서 방통위 관계자는 가격인하가 경쟁의 활성화를 통한 시장 자율적 행위의 결과물이어야 함을 분명히 했다.

일단 시장 자율의 원칙이 천명되었다는 점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정치적 고려에 의해 이동통신 요금을 인하하던 기존의 관행이 불식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우며 요금 문제에 대한 관리당국-업계-소비자단체의 줄다리기식 협상 방식 역시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가격인하를 유도하기 위한 방통위의 구체적 방안으로는 선불요금제의 활성화, 재판매제도를 통한 경쟁 활성화, 단말기 보조금 폐지를 통한 요금 인하 유도, 저소득층에 대한 요금감면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단 대책으로 제시된 방안 가운데 재판매제도를 통한 경쟁 활성화 정책은 요금체계에 대한 사후적 손질이 아니라 시장구조의 변화를 꾀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문제의 핵심에 가장 근접해 있다.

재판매란 자체통신망을 보유한 사업자가 망을 보유하지 않은 신규사업자, 즉 가상이동통신망 사업자(MVNO, mobile virtual network operator)에게 자신의 통신망을 도매가격에 대여해 주는 제도이다. 네트워크 산업이라는 특성상, 통신 분야에서는 적정 수 이상의 기업이 독자적 설비를 구비하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를 초래한다.

재판매 제도는 MVNO에 의한 서비스기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설비기반 사업체 간 경쟁에만 의존할 경우 발생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정책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미국과 유럽 주요국, 일본, 호주 등은 이미 재판매에 의한 MVNO의 사업 진출이 현실화돼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재판매제도 도입을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와 부처 간 협의는 2007년에 이미 마무리된 상태이나 2008년 상정 이후 아직도 법안 처리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매제도를 통한 서비스기반 사업자의 시장 진출은 일면 네트워크 산업의 시장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매우 매력적인 해법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까지의 길은 순탄치 않다. 일차적 쟁점은 도매요금의 부가방식이다. 대가 산정방식에 대해서는 망 제공자와 신규 사업자 사이의 이해대립이 첨예할 수밖에 없다.

MVNO 예비업체들은 사전규제 방식의 도매대가 산정을 법제화함으로써 망 구매가격에 대한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신규사업자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시장에서의 보호까지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재판매의 기본 개념을 생각하면 문제가 명확해진다.

비유컨대 망 보유사업자는 건물주이며 신규사업자는 건물 중 일부에 입주해 있는 사업자이다. 신규사업자는 남의 건물에서 중식당을 개점하고 건물주가 운영하는 다른 중식당(또는 한식당)과 경쟁을 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건물주는 건물 자체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지만 토지(이동통신사업의 경우 주파수)는 국가로부터 임차한 것이다.

규제당국의 법적 구속에 따라 건물주는 건물의 일부를 경쟁사업자에 임대해 주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대료가 지나치게 낮게 책정이 될 경우 수도나 전기와 같은 수단을 동원해 임차한 공간 자체의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더군다나 망의 거래는 위의 사례와 달리 복잡한 기술적 과정을 수반한다. 망 제공자들이 경제적 인센티브 없이 법적인 구속에 의해서만 재판매 계약을 체결한다면 각종 기술적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에 대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결국 서비스가 제공되는 최종 플랫폼은 망 제공자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신규사업자에 대한 유선망 개방과 통신망 상호접속을 의무화한 미국의 1996년 통신법의 효과에 대한 몇몇 연구결과는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이들 연구에 따르면 망에 대한 도매가격이 지역의 망통신 사업자의 투자 회수를 어렵게 할 정도로 낮게 설정될 경우 그 지역으로의 신규사업자의 시장 참여는 오히려 저조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가격요인(임대료)보다는 기존 업체의 비가격적 수단(전기나 수도)을 통한 전략적 진입장벽이 시장 활성화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행위를 차단하거나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나 기술적 장치를 발견하기도 어렵거니와 규제비용 또한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결국 망 거래의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면 도매시장 개방을 통한 경쟁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유선망 개방에 관한 위의 연구는 이동통신시장의 소비자가격 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함의를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도매시장에서의 망 개방을 통해 경쟁이 법제화되는 경우 소매시장에서의 가격 통제나 가이드라인 정책은 폐지돼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재판매제도 자체가 경쟁 활성화에 의한 가격 인하를 의도한 정책인데 소비자 가격에 대한 정책당국의 개입이 지속된다면 이는 동일한 목적에 대한 이중구속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투자 회수가 어려워지는 경우 망 제공기업은 합법적이고 기술적으로 경쟁기업의 진입을 어렵게 할 방법을 모색하거나, 재판매 대상인 서비스에 대한 투자를 꺼리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MVNO의 시장참여가 망 제공업체와의 실질적 경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가격산정방식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서비스의 선정이다. 일단 기존 업체의 주요 수입원인 음성통신 사업 분야에서는 실질적 경쟁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음성통신 서비스는 품질 차별화가 어려운 동질 상품에 속하며 따라서 가격경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망 자체를 대여해야 하는 신규 사업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비용을 절감하더라도 기존 업체와의 가격경쟁을 뚫고 시장을 확보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앞의 예를 다시 한 번 거론하자면, 건물주가 이미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면 임차사업자는 가능한 한 중식당을 피하고 다른 종류의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MVNO의 경우 현재의 상황에서는 기존 업체들이 폐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무선인터넷 등의 분야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 나가는 것이 서비스기반 사업체로서 부분적이나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이상이 이동통신시장에서의 재판매제도를 통한 경쟁 활성화 정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기 위해 통과해야 할 관문들이다. 그러나 도매대가 산정이나 비즈니스 모델의 발굴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서비스기반 경쟁은 애초에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결국에는 망 보유 사업자가 사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병목 설비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기반 경쟁으로부터 설비기반 경쟁과 같은 전면적인 경쟁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망 개방과 재판매정책의 역사가 가장 오래된 미국의 정책당국도 서비스기반 경쟁이 기존 업체와의 전면적 경쟁을 목표로 정책을 입안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미국 연방통신위원회가 서비스기반 경쟁을 법제화하게 된 이론적 배경에는 서비스기반 사업이 성공적인 신규 시장참가자에게는 설비기반 사업자로 발전하는 일종의 디딤돌의 역할을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신규 사업 참여자가 기존 사업자에 잠재적 위협으로 작동해 전면경쟁과 유사한 효과를 거두리라는 기대감도 서비스기반 경쟁을 도입하게 된 배경 중의 하나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미국시장의 경우 망 개방 정책의 경쟁유발 효과에 대한 검증이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IT 산업 환경이 급변해 버렸다는 사실이다.

아직 완전하다고는 보기 어렵지만 서로 다른 플랫폼과 기술에 기반을 둔 서비스 사이의 대체성이 높아짐에 따라, 대체기술에 기반을 둔 경쟁이 동일한 기술에 기반을 둔 설비기반 경쟁보다 더 강력한 경쟁 모드로 기능할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현재의 이동통신시장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제언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규제당국에 의한 직접적 요금규제는 소비자정책으로나 산업정책으로나 그 실효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둘째, 재판매제도는 도매가격의 산정 기준에 몰두하기보다는 계약 당사자 간의 합의를 수월하게 해주는 데 역점을 두고 입안돼야 한다.

셋째, 이후 통신산업에서 경쟁의 주요 모드는 동일한 서비스가 아닌 차별화된 서비스 또는 기술 간의 경쟁에 기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재판매제도의 성공 여부도, 동일한 망으로부터 얼마나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넷째, IT산업의 경우 기술혁신의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경직적 규제 논의는 산업환경 자체가 변화하는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지엽적 규제문제에 몰두하기보다는 미래지향적 기술에 대한 선별과 지원, 시장원리에 맞는 신축적 정책 기조 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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