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진행된 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 기자회견에서 연출을 맡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았을 때, 나의 내면으로 더 들어갈 수 있었다"라며 작품 활동의 원동력에 관해 이같이 밝혔다.
이란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파나히 감독은 '그저 사고였을 뿐'(It Was Just An Accident)으로 올해 열린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그는 이란 정부의 계속되는 제작 검열 속에서도 끊임없이 영화를 만들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국의 탄압은 파나히 감독이 자신의 내면을 더욱 깊게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검열과 탄압이 오히려 그의 영화 세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 것. 이번 영화 역시 개봉이 쉽지 않았지만, 프랑스와의 공동 제작을 통해 영화제 출품까지 진행할 수 있었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아카데미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에 프랑스를 대표하는 영화로 최종 선정되면서 본격적인 오스카 캠페인을 시작했다.
아울러 이번 황금종려상으로 파나히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받는 진기록을 세웠다. 앞서 그는 2000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영화 '서클'), 2015년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영화 '택시')을 받은 바 있다. 올해 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이 같은 파나히 감독의 공로를 기리기 위해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여했다.
파나히 감독은 "어떤 영화인이라도 영화를 만들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며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우울함에 빠질 것 같다"라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과거 자신을 고문했던 교도관을 우연히 마주친 한 남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에그발(에브라힘 아지지 분)은 만삭의 아내와 함께 운전하던 중 개와 충돌해 차가 고장 나 근처 정비소에 들른다. 그곳에서 그는 과거 자신이 고문했던 피해자 바히드(바히드 모바셰리 분)를 마주한다.
에그발은 바히드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바히드는 단번에 그를 알아본다. 바로 에그발의 의족 소리 때문이다. 과거 전쟁에 참여했던 에그발은 한쪽 다리를 잃었고, 이후 늘 의족을 착용했다. 의족이 끌리는 특유의 마찰음은 과거 바히드가 감옥에서 고문당하던 시절, 그의 뇌리에 깊게 각인된 공포의 소리였다.
분노에 사로잡힌 바히드는 에그발을 납치하기에 이른다. 에그발이 죄를 부인하자 바히드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 나서는 일종의 순례를 떠난다. 이 험난한 순례의 과정에서 에그발의 아내는 남편이 납치된 상태에서 출산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바히드가 그녀의 출산을 돕게 되면서 영화는 변곡점을 맞는다.
영화의 마지막, 결국 에그발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구도를 무화시키며 폭력의 주체와 방향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바히드가 고문의 피해자였다면, 에그발 또한 전쟁이 남긴 상처의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그저 사고였을 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립에 머무르지 않고 죄와 용서, 기억과 치유라는 키워드를 통해 국가 폭력의 희생자였던 이들의 얼굴을 또렷하게 응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