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산업시장에서 인공지능(AI)은 이제 투자와 상장의 열쇠가 됐다. 공모 시장에까지 번진 AI 열풍 속,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뿐 아니라 벤처캐피털(VC)들까지 정부 자금 지원 대상에 선정되기 위해 AI 투자 청사진을 앞다퉈 제시한다. "AI 활용"이라는 문구 하나만으로 기업가치에 프리미엄이 더해지는 모습이다. 프리미엄이 실제 사업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글로벌 무대에서는 이미 실적과 기대감 사이 줄다리기가 본격화했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독점력을 바탕으로 매출과 현금흐름을 동시에 증명하며 주가 상승 명분을 만들었다. 기대를 숫자로 설득한 대표적 사례다.
반면 국내는 제도적 특수성에 기댄 상장이 빈번하다. 기술특례·사업모델 특례 등의 제도를 통해 AI 활용 가능성만으로 상장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례상장 트랙을 통해 국내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외국계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한국행을 택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는 기술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명확한 제도적 장치가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혁신 기술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긍정 신호일 수 있지만, 동시에 이는 제도가 역으로 버블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상장 이후 기업가치를 지탱하는 건 결국 숫자다. 투자자들이 확인하고 싶은 것도 명확하다. 사업이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시점이 언제인지, 영업이익률은 해마다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지, 글로벌 점유율은 꾸준히 확대되고 있는지와 같은 운영 지표다. 낙관적 문구가 아닌 정량적 데이터가 뒷받침될 때 투자도, 상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투자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기업이 제도를 통해 상장에 나서고, 투자자는 그 제도를 신뢰해 자금을 집행하는 구조라면 검증 책임을 투자자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당국은 최소한의 심사와 공시 장치를 정교화하고, 기업은 기술 청사진을 정량 지표로 투명하게 제시할 의무가 있다. 각자가 책무를 분명히 할 때 AI 열풍은 버블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