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때 더 빛난 기업 자원 활용
지원과 동시에 홍보 효과도

대규모 국제 행사나 예기치 못한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가장 먼저 발 빠르게 움직인 것은 기업들이었다. 풍부한 물적·인적 자원을 갖춘 대기업들이 현장을 뒷받침하며 ‘민관 협력’의 대표 사례를 만들어왔다. 이는 국가 이미지를 지키고 사회적 신뢰를 높이는 동시에 기업에는 브랜드 홍보라는 긍정적 효과를 안겨주는 ‘윈-윈’ 구조로 자리 잡았다.
대표적 사례가 2023년 열린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다. 태풍 카눈 북상으로 참가자들이 급히 수도권 등 8개 시·도로 이동해야 했던 당시, 주요 기업들은 연수원과 사내 인프라를 긴급 개방해 안전한 숙소와 식사를 제공했다. 삼성은 대전 유성연수원, 고양 글로벌센터, 용인 휴먼센터 등 3개 연수원에 약 900명의 대원을 수용했고, 현대차그룹은 마북캠퍼스, 기아 비전스퀘어, 오산 교육센터 등을 열어 1000명 이상을 지원했다.
SK그룹은 인천 무의연수원과 안성 브로드밴드 인재개발원 등 시설을 제공했고, LG그룹은 평택 러닝센터를 개방해 몰디브·핀란드 대표단 240여 명을 수용하며 사내 병원과 구급차까지 상시 운영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기업들이 아니었다면 잼버리 운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보건 위기에서도 기업들의 대응은 신속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병상 부족 사태가 벌어지자 삼성·현대차·SK·LG·한화 등 주요 그룹은 잇달아 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했다. 삼성은 고양 ‘삼성화재 글로벌캠퍼스’(180실), 용인 ‘국제경영연구소’(110실)를 내놓고 삼성서울병원·강북삼성병원 의료진을 파견했다. SK는 용인 SK아카데미, 이천 SK텔레콤 인재개발원, 인천 무의연수원, 안성 브로드밴드 인재개발원 등 수도권 연수원 4곳(321실)을 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기업이 사회와 고객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화생명은 용인 라이프파크 연수원(200실)을 다시 생활치료센터로 운영하며 ‘희망센터’ 역할을 맡았다. LG는 이천 인화원(300실)을 제공하고, 앞서 경북 기숙사 시설을 통해 400여 명을 치료했다. 현대차그룹은 경주 인재개발연수원(193실), 글로벌상생협력센터(187실), 파주 인재개발센터 등을 열어 해외 입국자 격리와 환자 치료에 나섰다.
이처럼 대기업 연수원은 단순한 숙소를 넘어 숙식·위생·의료가 결합된 ‘올인원(All-in-one) 안전망’으로 기능하며 수도권 확진자 급증에 따른 병상 공백을 메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전자·IT 대기업들은 각종 재난에서도 신속 대응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강원·경북 산불 당시 삼성과 LG는 성금과 구호 물품을 지원하고 피해 지역 주민에게 가전 무상 점검·수리 서비스를 제공했다. 통신 3사는 지진·집중호우 등으로 통신망이 끊기자 이동 기지국을 설치해 임시 통신망을 운영하며 긴급 복구에 나섰다.
이 같은 대응은 단순한 ‘선의’로만 해석되지 않는다. 위기 속에서 기업들은 브랜드 신뢰도를 높이고 장기적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 유통·식품업계는 지원 과정에서 자사 제품을 자연스럽게 노출하며 홍보 효과를 누렸고, 화장품 업계도 국제 행사 후원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은 이제 단순 기부를 넘어 국가 행사와 재난 상황에 결합하면서 ‘국익 외교’의 한 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 국가 위기 상황은 단순한 사회공헌 활동을 넘어 글로벌 신뢰도를 쌓을 수 있는 기회”라며 “정부와 협력해 국가 이미지를 지키는 것은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