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영화 팬들 사이에서 '보은' 총공(총공격, 온라인상에서 주장하는 문구를 해시태그와 함께 공유하거나 같은 게시물을 올림으로써 집단적인 의사 표시)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배우가 과거 발매한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건데요. 이유도 단순합니다. 고마워서죠.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지 5년 여가 흘렀으나, 극장가는 도통 관객 수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도 나섰습니다. 영화계 소비 진작을 위해 7월 마지막 주 '영화 6000원 할인권'을 배포했는데요. 극장가에 모처럼 활기가 돌았습니다. 정부는 이달 8일에도 6000원 할인권 잔여분을 추가 배포했죠.
다만 일시적인 효과에 그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영화관에 한 번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건 가능하지만, 꾸준한 관람을 유도할 수는 없다는 건데요. 특히 오락적 상업 영화나 할리우드 대작이 쏟아지면서 중소·독립·예술영화의 스크린 확보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왔죠.
이때 특별한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규모는 작지만 반짝이는 내용의 영화 수입을 돕고 직접 자본을 보태며 투자자로서 나서는 배우들인데요. 영화 팬들이 '덕분에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며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영화 총관객 수는 1억2313만 명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2억2668만 명에 비해 무려 45.7% 줄었습니다. 매출액도 같은 기간 1조9140억 원에서 1조1945억 원으로 37.6% 감소했죠. 올 상반기만 놓고 봐도 전체 관객 수는 4250만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5% 줄었고, 특히 한국 영화 관객 수는 2136만 명에 그치며 팬데믹 이전 평균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여름'이라는 극장가 성수기도 반기지 못하는 상황에서 숨통을 튼 건 정부가 내놓은 영화관 입장권 할인권이었습니다.
7월 말 배포된 6000원 할인권 450만 장은 모처럼 관객을 불러 모으며 활력을 불어넣었는데요.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관람료 7000원)에 이 할인권을 적용하면 관람료는 1000원까지 떨어졌는데, 할인권이 배포되고 처음 맞이한 문화의 날(7월 30일)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전날(27만3332명) 대비 무려 215.4% 늘어난 86만2187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같은 달 개봉한 배우 조정석 주연의 '좀비딸'이 할인권 수혜를 입고 550만 관객을 모아 올해 최고 흥행작에 등극했습니다. 문화가 있는 날 개봉과 영화 할인권으로 1000원에 볼 수 있어 초반 흥행 열기가 솟구쳤죠. 개봉 하루 만에 43만91명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코미디 영화 중 개봉 첫날 최다 관객 수도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정부는 이달 8일 잔여분 약 188만 장을 추가 배포했는데요.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할인권 소진 후에도 증가한 관객 수가 유지될지는 미지수죠.
무엇보다 할인권 효과가 일부 흥행작에만 집중됐다는 점이 특히 아쉽습니다. '좀비딸'처럼 대중적 소재와 스타 캐스팅을 앞세운 영화는 관객몰이에 성공했지만, 규모가 작은 독립·예술영화는 여전히 스크린 확보조차 버거운 상황입니다. 스크린 수가 대작에 쏠리는 구조가 고착화되면서, 할인권을 받아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실제로는 선택할 수 있는 영화의 폭이 크게 줄어든 셈이죠.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배우들의 '투자'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단순히 스크린에 서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자본을 보태며 투자자로 나서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는 건데요. 선두에 선 이는 소지섭입니다.
소지섭은 2014년부터 소속사 51K를 통해 수입·배급사 찬란에 꾸준히 투자하며 여러 편의 해외 영화를 국내에 소개해오고 있습니다. 영화 팬들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영화들도 포함돼 있는데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와의 토크쇼', '유전', '미드소마' 등 30여 편을 수입하는 데 투자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개봉한 '서브스턴스'를 통해 국내 씨네필들의 '샤라웃'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으로 주연 데미 무어는 데뷔 45년 만에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는데요. 국내에서 데미 무어의 수상 소감이 화제가 되면서 영화가 역주행을 시작, 스크린 수도 2배가량 뛰어올랐습니다.
소지섭은 2022년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사실 비용이 많이 든다. 투자 수익은 거의 마이너스"라면서도 "좋은 영화가 많아 소개하고 싶어서 한다. '덕분에 좋은 영화 봤다'는 이야기가 가장 좋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소신 있게 반짝이는 작품들을 들여오는 만큼 영화 팬들은 덕분에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다며 보은에 나섰습니다. 그가 출연하는 영화를 n차 관람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심지어 소지섭이 과거 발매한 음원이나 뮤직비디오 스밍(스트리밍)에도 나선 이들도 있어 웃음을 자아냅니다.
이런 '보은 스밍', 정일우가 이어받을 예정입니다. 3일 개봉한 '투게더'를 통해 외화 투자자로 변신한 거죠.
'투게더'는 관계의 한계에 부딪힌 오래된 커플이 이사한 곳에서 서로의 몸이 점점 붙어버리는 기이한 현상을 겪는 바디 호러 로맨스입니다. 수입배급사 그린나래미디어에 따르면 정일우는 "'투게더'는 로맨스와 바디 호러를 결합해 사랑과 관계의 본질을 묻는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의 강렬한 메시지와 새로운 시도가 제이원 첫 투자작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판단했다"고 투자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는데요. 이번 영화를 통해 앞으로도 신선한 작품들을 소개하는 영화 투자자로서의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입니다.
이에 영화 팬들은 그의 행보를 응원하면서 '보은 스밍' 거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X(옛 트위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는 "정일우는 보답 스밍할 거 없냐", 지금 주말 드라마 방송 중이니 그걸 보자", "'거침없이 하이킥' 무한재생 하겠다" 등 반응을 보여 웃음을 더했죠.
관객 수 감소와 대작 쏠림으로 인해 독립·예술영화의 설 자리가 갈수록 좁아지는 상황. 배우들의 투자는 그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수익 창출이 아니라 영화 다양성 확대, 나아가 극장의 존재 이유를 지켜내는 기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죠.

소지섭과 정일우의 과거 출연작이나 음원을 스트리밍하는 '보은'은 가벼운 농담처럼 보이지만, 이는 곧 작은 영화가 극장가에 걸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보기 힘들다'는 현실 인식이 깔려 있는 셈이죠.
실제로 관객 수 감소와 대작 쏠림이 심화하면서 독립·예술영화의 상영 기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들의 투자는 큰 수익을 위한 재테크(?)보다는 영화 다양성을 지켜내는 노력으로 읽힙니다. 작품성이 높지만 흥행 가능성은 작아 외면받던 영화들이 배우들의 선택으로 국내에 소개되고, 관객들은 덕분에 새로운 작품을 만날 기회를 얻는 겁니다. 영화 팬들의 감탄과 작은 보은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죠.
한 수입배급사 관계자는 배우들의 외화 투자와 관련해 "위험 부담이 큰 작품도 상영 기회를 얻거나 초기 투자 유치에 힘이 실릴 수 있다"며 "작은 영화들이 극장에 설 자리를 마련하는 데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