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정부의 사업재편 자율협약 체결 이후 구조조정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연말에는 구체적 윤곽이 드러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11일 한국투자증권은 "설비 통폐합과 관련해 뚜렷한 진척은 없는 상태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나오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석유화학업종 구조조정에 대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주요 10개 나프타분해시설(NCC) 기업과 사업재편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연말까지 최대 370만 톤(전체 생산능력의 25%)에 달하는 감산안을 포함한 사업계획을 제출받을 예정이다. 업계가 자구노력을 전제로 한 설비 통폐합 계획을 내놓아야 금융·세제·R&D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조건부 금융지원’ 구조다.
여수산단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수직 계열화 형태의 합작사(JV) 설립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GS칼텍스 지분 절반을 보유한 셰브론의 동의 여부가 변수다. 셰브론이 한국 석유화학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만큼 향후 협상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롯데케미칼과 여천NCC는 특정 업체의 인수·합병보다는 일부 설비를 줄이고 산출물을 공동 활용하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그러나 최종 감산 방식은 유동적이다.
대산산단에서는 HD현대케미칼이 롯데케미칼 NCC 자산을 현물출자받아 통합하는 안이 추진되고 있으나 자산가치 평가와 감산 규모를 놓고 이견이 커 속도는 더딘 상태다. 울산에서는 SK지오센트릭이 대한유화에 NCC 설비 매각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한유화 측은 “확정된 바 없다”며 선을 그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각 기업의 재무상황과 주주구성이 달라 단기간 내 합의는 어렵다"면서도 "9월 채권금융기관 공동협약이 마련되면 10월부터 본격적인 사업재편계획 제출이 이뤄져 연말에는 구조조정의 큰 그림이 잡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구조조정이 지연될 경우 은행권 여신 회수 등으로 신용경색에 빠질 수 있는 만큼, 업계가 마냥 속도를 늦추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NCC 업체가 아닌 석유화학 기업도 은행권 지원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김 연구원은 "NCC를 보유하지 않은 석유화학사도 구조조정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국발 증설로 수급 악화가 불가피해 실적 부진과 신용등급 하락 압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권 공동협약 체결 이후 이들 기업 역시 자구계획을 제출해 은행권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기적으로 사업재편계획이 실행되면 공급과잉 해소를 통한 실적 회복과 신용등급 안정의 단초가 될 수 있다"며 "채권단 심사 통과 시 만기연장, 금리인하, 추가 자금지원 등으로 유동성 부담도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