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투자에 전문인력 필요한데…비자는 깐깐
대미 투자 속도 조절 불가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공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구금된 사태와 관련해 LG에너지솔루션이 최고인사책임자(CHO)를 급파하며 현장 대응에 나섰다. 미국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전문직 비자 발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필수 인력 투입마저 가로막힌다면 투자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기수 LG에너지솔루션 CHO(전무)는 7일 오전 미국으로 출국하며 “지금은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업체 직원들 모두의 신속한 조기 석방이 최우선”이라며 “정부에서도 총력을 다해 대응해 주시는 만큼 모두의 안전하고 신속한 복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객 미팅 등을 제외한 미국 출장을 전면 중단하고, 현재 출장자는 업무 현황을 고려해 즉시 귀국하거나 숙소에 대기하도록 하는 임직원 지침도 내렸다. 현대차는 직접 고용 인력이 단속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협력사를 대상으로 고용 관행 점검에 나선 상태다.
미국 현지에 숙련 인력을 보내려면 전문직 취업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가 필요하다. 그러나 H-1B는 연간 8만5000명으로 발급이 제한돼 있고 승인까지도 수개월이 걸린다. 주재원 비자 역시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중소 협력사들은 활용이 어렵다.
이 때문에 회의 참석이나 단기 출장 시에는 전자여행허가(ESTA)나 단기 상용(B-1) 비자를 활용하는 것이 관행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반(反)이민 정책’을 강조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며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최근 삼성전자도 사내 공지를 통해 “ESTA를 활용한 미국 출장 시 1회 최대 체류 기간은 2주 이내로 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담당자와 사전에 협의하라”고 알렸다.
배터리·반도체 같은 첨단 산업은 신규 공장 설립 과정에서 기술 이전과 초기 가동 안정화를 위해 숙련 인력 투입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비자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일정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단속 대상이 된 현대차·LG엔솔 합작공장은 내년 초 가동을 목표로 내부 설비 공사와 장비 반입이 진행 중이었으나 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연말까지 혼다 합작공장, 내년 상반기 애리조나 단독 공장 완공을 계획했지만 일정 지연이 예상된다.

다른 기업들도 비자 현황을 점검하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SK온은 포드·현대차와의 합작공장을, 삼성SDI는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파운드리 공장을 확장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공장을 짓고 있다.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에 속도를 붙이던 국내 조선업계도 비자 리스크를 주시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선 조선업 숙련공이 부족해 산업 협력을 위한 한국 인력 투입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현지 인력 채용을 늘리는 방안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근로 문화 차이와 높은 인건비, 신규 교육에 따른 시간·비용 부담, 보안 문제 등이 걸림돌로 꼽힌다.
업계에선 정부 차원의 비자 문제 해결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은 일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는 별도의 취업 비자 쿼터를 배정하지만, 한국은 FTA 체결국임에도 제외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비자 발급에 어려움이 커질수록 공장 건설 기간과 비용이 늘어나 대미 투자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며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 신설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