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EVㆍ수소차 판매량 30% ↑
LG, 올레드TV 고품질로 자리매김

일본 시장은 오래도록 한국 기업들에 ‘넘기 힘든 벽’으로 불렸다. 제조업 종주국이라는 자부심과 강력한 자국 브랜드 충성도가 맞물리면서 외국 기업이 틈을 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삼성·현대차·LG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이 점차 존재감을 키우며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단순한 판매 확대를 넘어 첨단 기술·공급망 협력까지 접점을 넓히는 전략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 일본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0%를 회복하며 의미 있는 반등에 성공했다. 갤럭시 S25 시리즈와 폴더블폰 신제품이 흥행을 이끌었다. 과거 일본 소비자들의 경계심을 의식해 ‘삼성’ 로고 대신 ‘갤럭시’만 내세우던 전략도 폐기했다. 이제는 삼성 브랜드를 전면에 걸고, 통신사와의 긴밀한 파트너십, 공격적 마케팅으로 소비자 인식을 바꾸고 있다. 일본 온라인 판매 순위에서 갤럭시 Z폴드7·플립7이 상위권을 차지한 것도 달라진 흐름을 보여준다.
현대차 역시 2022년 승용차 시장 재진출 이후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EV·수소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30% 가까이 늘었고, 올해는 일본 현지 팬덤 조직 ‘현대모터클럽 재팬’이 공식 출범했다. 단순히 차를 파는 데서 나아가 브랜드를 중심으로 팬덤을 구축하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잡은 ‘현대차식 팬덤 마케팅’이 일본에서도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LG는 프리미엄 가전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올레드 TV는 일본 시장에서 ‘고품질’의 대명사로 자리잡으며 70형 이상 대형 제품 점유율이 38%에 달한다. 일본 소비자들이 여전히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지만 특정 세그먼트에서는 LG가 오히려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는 완성차 업체와 전장부품 협력까지 넓히며 ‘보이는 성과–보이지 않는 협력’의 선순환을 구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 소비자 시장은 여전히 쉽지 않은 장벽이다. 애플·도요타·소니 등 자국 브랜드 충성도는 단단하고, 외국산 제품은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 기업들은 이에 맞서 AI·전동화·친환경이라는 차별화 키워드를 앞세우고 있다.
스마트폰에서는 인공지능(AI) 기능을, 자동차에서는 전기·수소차를, 가전에서는 초대형·프리미엄 제품을 내세우며 틈새를 공략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팬덤과 커뮤니티를 활용해 고객 접점을 늘리고 있다. ‘현대모터클럽 재팬’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재계는 소비자 시장 공략과 함께 공급망·기술 협력이라는 우회로도 열고 있다. 일본 닛토보가 독점하는 AI 반도체 기판용 유리섬유는 삼성전기·LG이노텍 등 한국 기판 기업이 반드시 확보해야 할 소재다. 반대로 닛토보도 한국 기업의 고밀도 가공 능력을 필요로 한다. 배터리 소재 역시 일본은 황·나트륨·리튬황 등 차세대 기술에서, 한국은 대량 양산에서 강점을 보여 협력 모델이 필수적이다.
데이터 협력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안한 ‘제조 데이터 플랫폼’은 일본의 정밀 데이터와 한국의 AI 속도·데이터 양을 결합하는 구상이다. 이는 소비자 시장과는 별개로, 글로벌 공급망 재편기 산업 생존을 위한 현실적 해법이라는 공감대를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소비자 시장은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어렵지만, 소재·데이터 협력은 당장 생존과 직결된다”며 “이런 구조적 협력이 쌓일수록 일본 내 소비자 인식도 조금씩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