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야말로 웃픈, 한편으론 ‘성지순례’가 될 뻔했던 은마아파트 GOAT밈이죠. 이와 더불어 100년 뒤 강남구 풍경에도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굳건한 은마아파트도 빠질 수 없는데요. 초고층 미래도시인데 은마아파트만 낡은 채 덩그러니 남아있는 그 사진.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사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날카로움이 함께했죠. 오랫동안 지지부진한 재건축에 ‘죽기 전에 못 볼 은마아파트 재건축’이라고 승화시킨 하나의 의식이었습니다.

다른 차원의 의식이 난무하던 혼돈 속, 모든 기원이 드디어 2025년 9월에 닿았는데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을 최고 49층, 5893세대 규모로 수정 가결했습니다. 농담과 합성 이미지로만 소비되던 그 ‘떡밥’이 드디어 현실의 문을 두드린 거죠.
강남 신화의 출발점, 은마아파트의 등장은 19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가야 합니다. 지금의 강남은 학원가와 초고층 건물이 가득한 부촌의 대명사지만 당시 대치동은 논밭과 비닐하우스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시골 풍경이었죠. 정부가 강북 인구를 분산시키겠다며 강남 개발을 본격화했고 그 중심에 세워진 아파트가 바로 은마아파트였는데요.
1979년 준공 당시 은마아파트는 28개 동, 4424세대라는 당시 서울 최대급 대단지였습니다. ‘무주택 국민을 위한 아파트’라는 광고가 무색한 고가였죠. 31평형 분양가는 2092만 원, 34평형은 2339만 원이었는데요. 버스 안내양 월급이 10만 원, 평균 가구당 소득이 14만 원 남짓이던 시절이니 ‘서민 주택’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비쌌죠. 은마아파트는 태생부터 달랐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려들었는데요. 대단지의 체계적인 설계와 넓은 도로, 그리고 무엇보다 이후 급성장한 대치동 학원가가 은마아파트를 한순간에 ‘교육 1번지’의 심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은마아파트에 사는 것만으로도 자녀의 입시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는 인식이 생겼고 이 학군 프리미엄은 곧 강남 집값을 끌어올렸는데요. 그야말로 은마아파트가 강남 신화의 상징이 됐죠.
은마아파트는 단순한 건물 그 이상이었습니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이 자금난에 은마아파트를 담보로 잡으면서 정권과 얽힌 이야기들이 소비됐고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강남 집값 논란의 중심에 섰는데요. 심지어 드라마에서도 언급됐죠. 2015년 방영된 tvN ‘응답하라 1988’에서도 5000만 원의 상금을 받은 최택(박보검 분) 가족에게 은마아파트를 사라고 투자를 권유했습니다. 시청자 모두 “그때 은마아파트를 샀다면?”이란 질문으로 저마다의 계산기를 돌렸는데요.
하지만 그런 은마아파트 또한 노후화가 따라왔습니다. 20년을 넘기자 주차난은 심각해졌고 배관과 전기 시설은 잦은 고장이 이어졌죠. 결국, 1996년 드디어 첫 재건축 추진 움직임이 시작됐지만 결과는 허탈했는데요.
2002년 안전진단에서 탈락하면서 사업은 좌초됐고요. 이후에도 시도는 이어졌지만 계속된 탈락에 이어 2010년 네 차례의 도전 끝에 조건부 재건축이 가능한 D등급을 받았죠. 주민들은 최고 50층 규모의 재건축안을 내놨지만 2017년 서울시의 35층 높이 제한에 가로막혔습니다.

그러나 드디어 1일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은마아파트 재건축 정비계획을 49층 5893세대 규모로 수정 가결했습니다. 35층 규제가 철폐되며 가능한 결과였죠. 앞서 제시됐던 50층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사실상 주민들이 꿈꾸던 초고층 재건축과 다름없는 성과였습니다.
공원과 400대 규모 공영주차장, 개방형 도서관, 매년 여름 침수 피해를 입었던 대치역 일대에는 4만㎥ 규모의 저류조까지 들어서고요. 거기다 늘어난 용적률 일부를 활용해 공공임대 231세대, 공공분양 182세대가 공급되죠. 정비사업으로 공공분양주택을 공급하는 첫 사례로 신혼부부와 다자녀 가구를 위한 특별공급 방안도 마련될 예정입니다.
이번 결정은 신속통합기획(패스트트랙) 방식으로 처리됐는데요. 설계 공모와 같은 별도 절차 없이 전문가 자문을 거쳐 주민 제안안을 다듬고 바로 도시계획위 심의에 올리는 방식입니다. 올해 1월 자문 신청 이후 불과 8개월 만에 결정이 난 셈인데요. 은마아파트와 어울리지 않는 과속(?)이었죠.

행복한 소식이지만 ‘곧’이라 하기엔 아직 많이 먼데요. 정비계획 가결은 말 그대로 첫 관문일 뿐입니다. 앞으로 건축심의,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 행정 절차에만 최소 6년이 걸리는데요. 이후 이주·철거, 착공·준공까지 4년 이상이 소요됩니다. 즉, 순조롭게 진행돼도 은마아파트가 새 옷을 입는 순간은 2034년 전후에나 가능하죠. 둔촌주공이나 잠실주공5단지 사례를 보면 주민 갈등이나 비용 문제로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은마아파트 역시 수천 세대가 얽힌 초대형 단지라 앞으로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입니다.
그래도 매번 장애물에 고꾸라졌던 은마아파트가 달리기를 시작한 건 사실인데요. 2025년 현재, 은마아파트는 여전히 낡은 외관으로 대치동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46년 동안 강남의 상징으로, 부동산 투자(혹은 투기)의 아이콘으로 그리고 재건축 밈으로 뜨겁게 존재해 온 은마. 어찌 보면 아쉬울 현 모습이 될까요? 밈의 완성본을 기다려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