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애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이 말이 낭만적으로 들리던 시절은 지났다. 2025년의 청춘들에게 연애는 감정만으로는 시작할 수 없는 활동이 됐다. 연애가 사치품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돈이다.
서울에 사는 29살 직장인 A씨. 세후 월급은 280만 원. 회식을 줄이고, 배달 앱을 지우고, OTT 구독도 끊었지만, 연애를 시작하면 가계부는 곧바로 빨간 불이 켜진다. 저녁 한 끼 5만 원, 카페에서의 커피와 디저트 2만 원, 귀가용 택시비 1만 원. 한 번 만나면 8만 원이 날아간다. 주 1회만 만나도 월 32만 원. 여기에 기념일 선물, 주말 영화나 전시회, 가끔 떠나는 여행까지 더하면, ‘텅장’이 되는 건 순식간이다.
기분 탓이 아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2025년 7월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 대비 16.5% 상승했다. 같은 기간 외식 물가는 25.1% 급등했다. 2020년 1만 5천 원이던 파스타 한 접시가 2025년엔 2만 원을 넘기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영화 가격도 마찬가지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를 보면 평균 관람요금은 2020년 8574원에서 2024년 9702원으로 13.2% 인상됐다. 주말 정가는 2020년 1만2000원에서 2024년 1만5000원으로 올랐다.
커피 한 잔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야 할 처지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는 2020년 4100원에서 2025년 4700원으로 14.6% 인상됐다. 저가 커피 브랜드도 1500원이던 아메리카노를 1800원으로 올렸다. 어느새 가격표가 붙은 낭만. 커피, 외식, 영화 값이 모두 인상되면서 사랑의 무게는 이제 마음이 아닌 지갑이 결정하는 세상이다.
가연 결혼정보가 2023년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5~39세 미혼남녀의 74.8%가 ‘물가 상승으로 데이트 비용이 부담된다’고 답했다. 1회 데이트 평균 지출액은 7만4700원. 2021년 5만9800원이던 수치가 불과 2년 만에 2만 원 가까이 뛰었다.
응답자 중 72.5%는 식사비를 가장 부담스러운 항목으로 꼽았고, 숙박비(44.4%), 카페·디저트(42.1%)가 뒤를 이었다. 연애는 더 이상 소소한 취미가 아닌, 가계 지출의 주요 카테고리가 됐다.

연애를 한다는 건 금전적인 비용만 감수하는 일이 아니다. 주말마다 데이트가 잡히면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자기계발 계획이 줄줄이 밀린다. 이처럼 연애로 인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경제학에서는 기회비용이라고 부른다.
행복한 데이트가 끝나도 마음 한구석엔 카드값 알림이 남는다. 매달 초 결제 명세서를 확인하며 예산을 다시 짜고,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몰려온다.
이 과정에서 연애가 주는 만족감보다 부담이 커지는 순간, 연애는 더 이상 ‘힐링’이 아닌 ‘과제’로 느껴진다.
경제학에서 효용(utility)은 ‘선택이 주는 만족감의 크기’를 뜻한다. 이 개념을 연애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연애 효용은 한 달 동안 연애가 가져다주는 행복에서 돈, 시간, 스트레스라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뺀 순만족도다.
쉽게 말해,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쓸 수 있는 최대 금액(WTP)”과 “실제로 쓰는 돈과 시간”을 비교해보는 것. 행복이 더 크면 연애는 유지할 가치가 있고, 부담이 더 크다면 데이트 빈도나 방식, 비용 구조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사랑을 숫자로 평가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효용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덜 지치고 더 행복할 수 있을까’를 알려주는 지도와 같다. 경제적 여유가 많지 않은 지금 세대인 만큼, 더더욱 내 상황에 맞춰 마음과 지갑이 모두 편안한 연애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하다.
사랑은 여전히 소중하지만, 감정만으로 유지하기에는 청년들의 지갑이 너무 얇아졌다. 연애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세대의 선택은 ‘연애보다 커진 현실’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건 “돈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는 낭만적인 위로가 아니다. 청년들이 사랑할 용기를 잃지 않도록 만드는 사회적 장치다. 경제적 부담을 줄이고 연애가 다시 일상의 한 부분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지금 세대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바라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