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투자·고용 위축 불가피…경영 불확실성 확대”
소액주주 보호 명분 속 투기자본 개입 우려 커져

재계가 이른바 ‘더 센 상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2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자,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이 시급하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은 소수주주 권익 보호와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를 내세우고 있지만, 재계는 “경영 안정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규제”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한국경제인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등 경제8단체는 공동 입장문을 내고 “7월 1차 상법 개정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와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추가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번 상법 개정으로 경영권 분쟁 및 소송 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이 큰 만큼, 국회는 입법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있는 입법에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특히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보장할 수 있도록 글로벌 스탠다드 수준의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며 “기업이 미래를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경영판단원칙’을 명문화하고, ‘배임죄’도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경영 판단 원칙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근거로 주의 의무를 다해 경영상 결정을 내린 경우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더라도 의무 위반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배임죄는 주요국에 비해 지나치게 무거운 처벌, 모호한 구성 요건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경제계에선 두 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으로 기업 경영권이 크게 위협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최근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이번 개정안 적용 대상 기업의 주주총회 이사 선임 과정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이사 수를 7명으로 가정했을 때 최대 주주 및 특수관계인이 확보할 수 있는 이사 수는 2~3명에 불과했다. 반면 2대 주주 이하 주주들이 선임할 수 있는 이사 수는 4~5명으로, 최대 주주 측의 의사에 반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진다.
대한상의가 30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가 동시에 반영될 경우 경영권 위협 가능성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의 74%에 달했다.
기업 분석기관 리더스인덱스도 상법 개정의 파급 효과를 경고했다. 리더스인덱스는 50대 그룹 중 오너 일가가 보유한 우호지분율의 약 38%가 감사위원 선출 과정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고 분석했다. 1차 개정안에서 도입된 합산 3% 룰에 이어 이번 2차 개정안의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까지 모두 적용되면, 40.8% 중 37.8%가 무력화된다는 계산이다. 이는 곧 국내 주요 그룹들이 감사위원 선임 과정에서 사실상 방어 수단을 잃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전날 통과된 ‘노란봉투법’과 맞물려 기업 경영 불확실성이 한층 커졌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노동 쟁의 범위 확대에 이어 지배구조 규제까지 겹치면 국내 기업은 노사관계·경영권 분쟁이라는 이중 리스크를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제도 변화가 곧바로 투자·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경영 안정성이 확보돼야 수조 원대 장기 투자를 결단할 수 있다”며 “상법 개정안 시행으로 외부 간섭이 심화되면 신규 투자보다는 보수적 경영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중견기업들의 부담은 더 크다. 재계 관계자는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만 대상으로 하지만, 대기업 협력사와 공급망을 이루는 중견기업들까지 경영 불확실성의 영향을 받게 된다”며 “투자 지연과 신규 채용 축소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치권은 소액주주 권익 보호라는 순기능을 강조하지만, 재계는 오히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본다. 소액주주 보호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글로벌 헤지펀드 같은 대규모 자본이 지배구조 개편의 공백을 메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 SK와 소버린 사태, KT&G와 칼 아이칸 사례처럼 해외 펀드가 지분 쪼개기와 집중투표를 활용해 이사회에 진입한 뒤 단기 차익을 노리며 대규모 분쟁을 일으킨 전례가 있다. SK는 당시 1조 원 이상의 경영권 방어 비용을 지출해야 했고, KT&G 역시 2조 원이 넘는 비용을 소모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치권이 기업의 경영 현실을 외면한 채 주주 권익과 노동권만을 과도하게 강화하는 입법을 밀어붙였다”며 “이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한국 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와 국내 고용 유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