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마련 어려운 업계 우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한미 정상회담을 엿새 앞두고 기업인들과 만난 것은 정부의 구체적인 통상협상 전략과 대미 투자 계획을 점검하고 경제 분야 성과 극대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민간 부담이 없는 방안으로 대미 투자책 마련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기업들의 부담이 아예 없지는 않다. 경기 불황의 장기화로 투자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보수적 경영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만큼, 민간 투자 참여 규모는 미지수다.
정상회담 핵심 의제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방안이 유력하다. 사안의 핵심은 이 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전체 대미 투자액 중 1500억 달러는 한미 조선업 협력펀드에, 2000억 달러는 반도체·원자력 발전·2차전지·바이오 분야 등 우리 기업들이 경쟁력을 보유한 분야에 투자펀드에 배정됐다. 구조는 정책금융기관이 자금을 빌려주거나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자금조달을 지원하는 것이다. 정부는 실제 기업이 부담해야 하는 몫은 전체의 5% 미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는 약 175억 달러를 기업이 직접 투입해야 해 ‘결코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토로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아무리 보증 등 정책 금융이 뒷받침된다고 할지라도 상당한 액수의 기업 투자금이 들어가야 하고, 고작 5%라고 해도 각 기업이 감당할 몫을 계산하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글로벌 경기 둔화로 기업들의 투자 여력이 줄어드는 점도 문제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부담에 더해 반도체와 배터리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대기업들조차 마른 수건을 짜내야 하는 형편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들은 이미 미국 현지에서 공장을 짓거나 운영하며 큰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대미 투자펀드까지 추가되면 부담은 배가된다. 특히 현금 흐름이 마이너스인 배터리 기업들은 감당이 쉽지 않다. LG에너지솔루션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연결 기준 잉여현금흐름은 약 -4조7184억 원으로 현금창출력이 제한적인 상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대규모 투자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대미 투자펀드라는 추가 부담까지 겹쳐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텍사스주 테일러에 신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는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고 있는데, 여기에 펀드 분담금까지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미국을 방문해 내년 사업계획을 점검한 것도 이런 이유와 맞닿아 있다.
상호 관세율이 기존 20%에서 15%로 낮아지며 수출 기업들의 부담은 다소 줄었지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반도체와 전자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관세 부과 여부가 확정되지 않은 탓에 하반기 비용 구조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고, 이런 상황에서 대미 투자펀드까지 병행해야 하니 기업들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전자 업계 한 관계자는 “상호 관세가 예상했던 수준에서 낮아지며 큰 고비는 넘긴 듯하지만 대미 투자펀드 투입은 또 다른 난관”이라며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