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지나친 공포 자제하고
재난에 대응하는 지속 노력이 중요

밤잠을 설치게 만들던 열대야가 지난 주말부터 갑자기 사라졌다. 예년보다 이른 6월 말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폭염이 올해는 일찍부터 기가 꺾여버린 모양이다. 때이른 폭염과 기록적인 폭우에 지친 입장에서는 더없이 반가운 일이다. 자연에 의한 계절 변화의 위력도 감동이다. 8월 둘째 주의 전력수요가 사상 최대를 기록할 것이라고 걱정하던 전력 당국도 한숨을 돌렸다.
하필이면 지난 9일이 삼복더위가 끝난다는 ‘말복’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7월 20일의 초복보다 20여 일 앞서 시작된 열대야에 지쳐버린 탓인지 실제로 삼복더위를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삼복더위를 이겨낸 기념으로 말복에 함께 즐기던 삼계탕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삼복은 2700년 전 중국의 진(秦)나라에서 시작된 잡절(雜節)이다. 천문학적 정보를 바탕으로 농사에 필요한 계절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24절기’와는 분명하게 구분되는 전통이라는 뜻이다. 하지 무렵의 끔찍한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억지로라도 선선한 가을에 대한 기대를 심어주기 위한, 임의로 시작한 전통이다. 더위에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특별한 보양식을 먹는 것이 삼복을 즐기는 전통적인 지혜로 굳어졌다.
삼복은 태양의 남중 고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계절의 정보가 담긴 ‘24절기’에 달의 차고 기우는 현상에 주목했던 동양의 ‘음양오행설’을 절묘하게 절충한 전통이다. 천간지지(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7번째에 해당하는 ‘경(庚)’은 오행의 ‘금(金)’과 음양의 ‘양(陽)’에 해당하고, 계절로는 가을을 뜻한다고 믿었다. 더위를 물리칠 냉방 기술이 없었던 시절의 고육지책이었다.
초복은 태양의 남중 고도가 가장 높은 하지(6월 21일)가 지난 후 세 번째 경(庚)일이다. 그래서 초복은 하지의 일진(日辰)에 따라 하지로부터 20일에서 29일이 지나 대지가 뜨겁게 달아오른 7월 11일부터 20일 사이가 된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이다. 중복(中伏)은 그로부터 10일이 지난 네 번째 경(庚)일이다.
삼복의 마지막인 말복(末伏)의 기준은 입추(8월 8일)다. 입추가 지난 첫 번째 경일이 말복이다. 중복과 말복 사이에 20일의 간격이 있는 ‘월복(越伏)’이 일반적이다. 30일이나 지속된 더위가 물러설 것이라는 기대가 담긴 선택이다.
24절기(365일)와 천간의 주기(10일)가 일치하지 않는 탓에 올해처럼 중복(7월30일) 이후 열흘 만인 8월 9일이 말복이 되는 해도 있다. ‘매복(每伏)’의 해는 고작 30%뿐이다. 그러나 더위가 짧게 끝날 것이라는 전통적인 기대는 대부분 아쉬운 희망으로 끝난다. 실제로 매복의 해였던 올여름은 40일 가까이 계속된 폭염과 폭우로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삼복의 전통에서 과학적 진실을 찾을 이유는 없다. 양력으로 표현되는 ‘계절’이나 음력으로 표현되는 음양오행의 ‘일진’이 모두 대기의 국지적 상황으로 결정되는 ‘날씨’와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일기예보가 불가능했던 시대의 옹색한 선택에서 애써 과학을 찾으려는 시도는 의미가 없다.
삼복이 지나갔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이번 주에는 전국에 지속적으로 물 폭탄이 쏟아진다는 예보가 있다. 이래저래 9월 초까지는 거친 날씨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9월에 폭염경보가 발령되기도 하고, 태풍이 찾아오기도 하는 것이 중위도 지역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스스로 극복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운명이다.
폭염이나 폭우와 같은 ‘극한 기상’은 어제오늘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와 1959년 사라호 태풍이 남긴 피해가 여전히 우리에게 최악의 기록이다. 기후가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기후 변화에 대한 과도한 공포나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기후에 ‘적응’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훨씬 더 절박하다.
결국 자연이 인간에게 편안하고, 포근하고, 안전한 안식처라는 안이한 인식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문명을 거부하고 산속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자연인’의 삶을 동경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거칠고 위험한 자연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자연재해에 대응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안전을 지켜내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남이 자신의 안전을 지켜줄 것이라는 비현실적인 환상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