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 기술명칭 이례적 선제 확보
HBM 전체 생태계 주도권 강화
"법적방어 넘어 리더십 상징 수단"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 시대를 겨냥한 차세대 메모리 기술 상표권을 잇달아 출원하며 시장 주도권 강화에 나섰다.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성공을 잇는 후속 기술군의 명칭을 선제적으로 확보해 향후 기술 지형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5일 본지 취재 결과 SK하이닉스는 최근 국내 및 미국 특허청에 ‘hHBM’을 포함해 ‘bHBM’, ‘HBS’, ‘LPW-NAND’ 등 총 4건의 메모리 상표를 출원했다. 연초 이후 몇 달 만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출원으로, SK하이닉스 역사상 보기 드문 이례적인 사례다. 이들 기술은 모두 AI 고성능 컴퓨팅(HPC)과 대용량 데이터 처리 수요에 대응하는 특화 메모리다. 업계에선 ‘향후 시장 선점을 위한 이름표 달기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가장 최근 출원된 ‘hHBM’은 기존 HBM에 다른 메모리 구조나 처리 기능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HBM(Hybrid HBM)’으로 유추된다. 업계에서는 HBM과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 또는 낸드 등 이기종 메모리 간 통합 형태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아직 개발이 완료된 제품은 아니며, HBM 파생 기술 확대에 대비한 상표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상표인 ‘bHBM’ 역시 기술 세부 내용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업계는 기존 HBM 구조의 기반이 되는 베이스 다이(Base Die)를 진화시킨 형태일 것으로 보고 있다. 데이터 처리 속도 향상이나 스마트 기능 추가 등 새로운 구조가 적용된 ‘차세대 HBM’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가 상표를 등록한 ‘HBS’와 ‘LPW-NAND’는 단순한 이름 선점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 기술은 5~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에서 열리는 ‘FMS 2025’(플래시 메모리 서밋)에서 처음 공개된다. 이 자리에서 SK하이닉스는 고성능 메모리 솔루션의 확장판으로 두 기술을 전면에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HBS(High Bandwidth Storage)는 HBM의 구조를 스토리지에 접목한 기술로, I/O 통로를 대폭 확장해 대용량 데이터 병렬 처리에 최적화된 ‘고대역폭 스토리지’다. 그래픽처리장치(GPU)나 AI 가속기와 결합해 기존 낸드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토리지판 HBM’으로 불린다. LPW-NAND(Low Power Wide I/O NAND)는 낮은 전력으로 넓은 대역폭을 구현한 차세대 낸드 기술이다. 에지 서버나 데이터센터 등 고성능·저전력 환경에 적합하다. 고성능 D램과 패키징 돼 AI 칩과 함께 장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SK하이닉스는 HBM에서 확보한 기술 우위를 HBS, LPW-NAND 등으로 확장하며 메모리 전 분야에서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동시에 hHBM과 bHBM 등 후속 HBM 계열 상표까지 미리 등록해 HBM 생태계 전체에 대한 주도권을 강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제 메모리 시장은 단순 용량 경쟁이 아닌, 특정 수요 맞춤형 기술이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른 시기”라며 “상표권 선점은 법적 방어를 넘어 해당 기술에 대한 시장 리더십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