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생산 비중 높은 이차전지 소재 기업들
에코프로비엠·포스코퓨처엠 하락가능성↑
美수출 높은 철강, 수익성 변동 실적 부진
메모리 반도체, 품목별 관세가 핵심 변수
상호 관세를 포함한 미국의 무역 장벽으로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신용도가 나빠질 것으로 전망됐다. 45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와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부담으로 국내 대기업의 차입금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관세 영향으로 수출 기업의 매출 및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평가 3사(한국신용평가·NICE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는 4일 미국의 관세 부과와 비관세 장벽 철폐 압력이 국내 주요 수출 기업의 신용도에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무역확장법 232조 등의 보호무역 정책이 국내 기업의 신용도에 직·간접적인 악영향을 준 선례가 있는 데다 이번 상호관세 등의 파장이 당시보다 더욱 클 것이라는 우려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보후무역 정책 이후 신용평가사들은 주로 완성차, 자동차부품, 철강, 디스플레이 등에 속한 주요 수출 기업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현대차(AAA→AA+), 기아(AA+→AA), LG디스플레이(AA→AA-) 등의 기업이 신용등급 강등 대상이 됐다. 품목 관세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게 된 포스코, 현대제철 등의 철강 기업들은 국제신용평가사들로부터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고초를 겪었다.
당시 신용도가 하락한 자동차 부품사 화신은 현재까지도 ‘BBB0’ 등급에 머무르며 7년째 신용도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엠에스오토텍과 신성이엔지는 2018년 신용등급이 강등된 이후 공모채 발행을 중단하는 등 회사채 시장에서 퇴출됐다. LG디스플레이는 2019년 ‘AA급’에서 ‘부정적’ 전망이 달리며 신용도 하향 압력을 받았고, 급기야 A 등급으로 내려앉았다. 동원파이프는 같은 시기 BB급 신용도를 부여받았지만, 현재는 B 수준까지 하락한 상태다.
신용평가사들은 새로운 관세가 반영되는 올해 하반기부터는 기업 신용도를 한층 더 보수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상반기는 관세 노출 기간이 짧았던 만큼 신용도 평가에 실질적 영향이 제한적이었으나, 하반기부터는 업종별 관세 분담 구조와 수익성 변화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등급 평가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이 가장 높은 업종으로 이차전지 소재 기업들을 꼽는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 등 국내 생산 비중이 높은 이차전지 소재 기업의 수익성이 저하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 "전방 수요 둔화와 가격인하 압력 등 간접적인 수익성 악화 요인이 중첩되면서 신용도 하락 압력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철강 업체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미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철강업체인 세아제강, 세아베스틸 등은 관세 인상에 따른 실적 부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용펑가사 관계자는 "세아제강의 미국향(向) 매출 비중이 38%에 달한다"면서 "강관·표면처리강판 중심의 수출 구조상 수익성 변동성에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종은 현재까지 상호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상태다. 하지만 8월 중순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품목별 관세율이 핵심 변수다.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어, 한국·중국 중심의 생산 기반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국내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기본협정 수준에 불과하다”라며 “향후 반도체·IT·전기차 부품 등 민감 품목에 대한 구체적인 관세율이 산업별 신용도와 수출 경쟁력에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들은 공급망 다변화와 현지 투자 확대, 전략적 가격 정책 등으로 대응력을 키워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