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가 내놓는 산업재해 정책이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방법론에 터 잡고 있어 우려를 떨칠 수가 없다. 지난달 29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산업재해 근절대책으로 제시된 방안을 보면 온통 제재 일색이었다. 강한 형사처벌 외에 영업정지, 주가 폭락, 징벌적 배상 등 제재 융단폭격을 하겠다는 태세다.
국무위원들은 산업안전 제재에 있어 우리나라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에게 산업안전 제재가 과태료만 있는 것처럼 잘못 보고한 것도 제재 일변도의 토론으로 흐르게 하는 데 원인 제공을 했다.
설령 의도가 선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그럴 가능성이 높다. 의도한 것을 달성하기 위해선 올바른 비전뿐만 아니라 정확한 현실 인식과 정교한 방법론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산업재해 문제는 복잡다단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많은 요인이 얽혀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는 ‘아니면 말고’ 식의 설익은 대책이 아니라 충분한 조사와 면밀한 진단을 거친 정교한 방법론이 필수적이다. 헝클어진 매듭을 찾아 풀려고 하기보다는 단칼로 베려는 행동은 멋져 보일 수는 있지만 문제를 되레 악화시키기 일쑤다.
특히 중대재해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요인 중에는 기업 내 요인도 있지만 기업 밖 요인도 존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측 가능성과 이행 가능성이 결여된 조잡한 법정책이 많은 중대재해의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측할 수 없거나 이행할 수 없는 법규정은 수사기관의 자의적 해석과 집행으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새 정부는 이런 현실은 인식하지 못한 채 감독과 제재로 산업재해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 산업안전 수준이 낮은 것에 대한 투철한 문제의식과 면밀한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감독과 엄벌의 강조로 수렴되는 이유이다. 법정책을 위시한 예방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와 실효성 없는 법제의 정비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산업안전 행정인력을 그 전 30년간 늘어난 수보다도 2배 이상 늘리고도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이미 행정인력은 미국보다 약 8배, 일본보다 약 4배나 많고 관할범위가 넓은 영국보다도 많다. 문제가 행정인력 부족에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새 정부는 예방시스템 개선보다는 지금도 비대한 행정인력 증원에 매몰돼 있다. 행정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인식부터 잘못돼 있고 대책이 단선적이고 안이하다.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고 답습하려 한다. ‘고비용 저효과’ 산업안전으로 고착화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산업안전 감독은 적발을 위한 적발과 거친 수가가 관행이 돼 있다. 심지어 적발 건수를 미리 정해 놓고 감독한다는 말까지 들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감독시스템 개선 없이 산업안전 노동경찰(특별사법경찰)을 당장 300명, 새 정부 임기 내에 최소 현 인원만큼 늘리겠다는 것은 산업안전의 경찰국가화를 불러올 수 있다.
‘외주화는 나쁘다’는 식의 도급에 대한 잘못된 인식은 도급인(원청)이 사실상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뒤틀린 생각으로 귀결되고 있다. 도급인에게 도급작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거나 구체적 지휘를 할 수 없는데도 법리를 무시하고 수급인(하청)과 동일한 의무가 있다고 보면서 도급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간편한 방법일지는 모르지만 이런 비과학적 접근으론 재해를 줄일 수 없다.
각 의무주체에 대해선 그 지위와 역할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 조직관리의 철칙이자 안전관리의 기초이다. 도급인에게 수급인과 동일한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과 같은 이행 불가능한 역할을 강요하거나 의무주체 간 역할과 책임이 불분명하면 재해 예방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난마처럼 꼬인 산업재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과학적인 현실 진단과 법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이다. 실효성이 없는 산업안전 규제는 기업의 부담만 늘리고 공권력 갑질의 도구로 전락될 수 있다. 새 정부의 출범을 맞이하여 산업재해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