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플법 전면 백지화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되면서 이와 관련된 국내 정치권의 입법에 관심이 쏠린다. 협상 과정에서 우려가 컸던 농축산물 추가 시장 개방은 없게 됐지만,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심(農心)을 달래기 위한 법안 처리는 그대로 처리할 방침이다. 다만 미국의 반발로 멈춰 섰던 ‘온라인 플랫폼법’(온플법)은 처음부터 새롭게 논의하게 됐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과잉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농수산가격안정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 개정안은 내달 4일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출범과 동시에 윤석열의 거부권 남용으로 멈췄던 민생 개혁 입법에 속도전을 낼 것”이라며 이들 법안과 함께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2차 상법 개정안,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 등 여야 쟁점 법안을 모두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곡법·농안법 개정안 한미 관세 협상에서 쌀 개방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농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에 민주당이 입법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최종적으로 협상 의제에 오르지 않으면서 정치권은 한숨 돌렸다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만큼 관세 협상과는 별개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뇌관으로 떠오른 건 온플법이다. 대형 플랫폼 기업에 대한 포괄적인 규제를 담은 온플법은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우려해 8월로 논의를 미뤘다. 온플법은 크게 ‘온라인 플랫폼 독점 규제에 관한 법률’(독점규제법)과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공정화법) 두 개로 나뉘는데, 구글, 애플,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어 미국의 반발이 심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거대 플랫폼 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 내용의 독점규제법을 빼고 배달앱 등에서 수수료 상한제, 정산주기 단축, 단체 교섭권 보장 등을 담은 공정화법이라도 처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미국이 입법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면서 무산됐다.
이날 대통령실에 따르면 온플법은 협상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여당 간사인 강준현 의원은 본지와 통화에서 “(온플법을) 처음부터 다시 백지화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반발로 인한 대안책으로 수수료 상한제를 온플법이 아닌 외식산업진흥법, 소상공인지원법 등 별도법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의 방안도 검토됐지만, 이것도 원점으로 돌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미국의 추가 압박 가능성이 나오면서 온플법 입법이 순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정무위 관계자는 “배달의민족도 독일 기업인 DH가 보유하고 있고 쿠팡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것처럼 다수의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과 연관돼 있다”며 “온플법을 그래도 강행하든, 국내 기업에만 규제하든 미국이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온플법과 함께 이 대통령이 공약으로 내세운 ‘망이용계약 공정화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입법에도 관심이 쏠린다. 22대 국회에서는 3건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한미 통상 협상 압박으로 계류 상태가 지속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