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1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럽, 일본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게 됐다. 관세에 따른 타격은 불가피하지만 다른 주요국과 동일한 조건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31일 미국과의 관세협상에서 상호관세를 15%로 합의하는 동시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도 15%로 낮추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협상 과정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직접 워싱턴을 찾아 힘을 보탰다. 앞서 그는 연초 21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발표한 바 있으며 미국 정부와의 신뢰 구축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은 한미 관세 협상 타결과 관련해 “대미 관세 문제 해결을 위해 온 힘을 다해주신 정부 각 부처와 국회의 헌신적 노력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관세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 방안을 추진하는 동시에 품질 및 브랜드 경쟁력 강화와 기술 혁신 등을 통해 내실을 더욱 다져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관세율이 일단 확정되면서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해소됐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향후 유럽, 일본 브랜드와 유사한 가격대에서 경쟁하게 되며 브랜드 인지도, 차량 성능, 서비스 품질 등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무관세 기조에서 한 단계 후퇴했지만 예측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 만큼 전략 재정비가 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출발선은 다르다. 일본과 유럽은 기존에 2.5%의 미국 수입차 관세를 적용받았던 반면,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무관세 혜택을 누려왔다. 결과적으로 한국산 차량은 단번에 15%포인트(p) 상승한 셈이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이전보다 다소 불리해진 상황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가 최선을 다해 (자동차 관세) 12.5%를 주장했으나 15%를 받았다. 아쉬운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15%라는 높은 관세가 적용됨에 따라 한국산 자동차의 경쟁력 제고가 중요해졌다. 현대차·기아는 다각적 방안을 추진해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한국 정부가 미국산 차량에 대해 무관세를 유지하기로 한 결정은 국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브랜드 차량의 한국 내 판매 비중이 낮고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내수보다 미국 시장 판매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번 관세 조정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자동차업체들의 미국 현지 생산 확대를 자극하고 신흥시장 다변화를 위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현대차·기아는 올해부터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가동에 들어갔고 북미 역내 생산 비중을 지속 확대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유지되면 국내 배터리 산업에도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이른바 ‘K-배터리 3사’는 이미 미국 내에서 합작공장 설립과 증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배터리 완제품(셀) 수출보다 현지 생산 비중이 높아 이번 관세 조치에 따른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관측된다.
또한 미국 정부는 중국산 배터리에 대해 관세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돼 상대적으로 한국산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세부 요건, 특히 해외우려기업(FEOC) 관련 규정의 적용 범위와 해석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로 지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