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여름이지만, 패션 업계는 이미 다음 계절을 준비 중입니다. 일찌감치 시즌오프 세일에 나서면서 재고를 털고 신규 시즌 상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려는 건데요.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도 눈길이 쏠린 곳이 있습니다. 바로 킴 카다시안의 브랜드 '스킴스(SKIMS)'입니다.
스킴스는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시즌오프 세일 소식을 전했습니다. 24일(현지시간) 시작된 이번 세일에서는 속옷뿐만 아니라 스윔웨어와 라운지웨어, 액세서리 등 다양한 상품을 최대 50% 할인한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이번 세일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스킴스가 더 이상 '속옷 브랜드'로만 소비되지 않는다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반짝 유행한 뒤 지는 브랜드들과도 다른데요. 이너웨어 하나에도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투영하는 요즘. 그리고 스킴스는 그 기준을 누구보다 명확히 해석해 보여주는 브랜드죠.

스킴스는 킴 카다시안이 2019년 설립한 브랜드입니다. 지금은 단순 속옷 브랜드를 넘어 라운지웨어, 스윔웨어, 남성복, 키즈 라인으로도 사업을 확장했죠.
같은 카다시안 패밀리의 패션 브랜드 중에서도 스킴스의 입지는 남다릅니다. 스킴스를 필두로 킴 카다시안의 사업이 '대박'을 치면서 그는 2023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선정한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렸고요. 지난달 3일 발표된 '2025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 셀러브리티' 순위에서는 토크쇼의 여왕인 오프라 윈프리에 이어 두 번째에 이름을 올렸죠.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리한나, 마돈나, 비욘세를 제친 순위입니다.
클로이 카다시안의 패션 브랜드 굿 아메리칸(Good American)도 인기가 높지만 매출부터 인지도, 트렌드 리더십 면에서는 모두 스킴스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카일리 제너는 자신의 이름을 따 '카일리 스윔(Kylie Swim)'이라는 수영복 브랜드를 2021년 론칭했는데요. 비싼 가격에 형편없는 질로 혹평이 쏟아졌고, 1년도 되지 않아 결국 사업을 종료한 바 있죠.
스킴스를 론칭한 배경은 단순했습니다. 킴 카다시안은 자신의 피부와 딱 들어맞는 색의 이너웨어가 없어 커피와 티백을 이용해 속옷을 염색해 입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다양한 피부 톤과 몸을 위한 속옷이 없다는 문제의식, 스킴스는 바로 여기서 출발했죠. 스킴스의 브래지어만 봐도 8가지 이상 피부 톤 컬러로 출시되고요. 브라렛 사이즈도 XXS부터 4X까지 9가지 종류가 준비돼 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자석, 혹은 밸크로로 여닫을 수 있는 여밈 구조를 적용하거나 한 손으로 착용 가능한 간편한 설계 방식의 상품도 있는데요. 휠체어 사용자 등 다양한 신체 조건을 고려한 어댑티브(Adaptive) 컬렉션입니다.
광고나 캠페인에서도 같은 맥락이 이어집니다. SNS에는 킴 카다시안뿐 아니라 다양한 체형과 인종의 모델, 인플루언서들이 등장해 브랜드와 상품을 소개합니다. 실제 휠체어를 사용하는 소비자나 장애인 모델도 등장해 다양한 몸과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는데요. 스킴스의 슬로건은 '모든 몸을 위한 솔루션(Solutions for every body)'입니다. 속옷을 매개로 자기 돌봄과 감각적인 트렌드까지 연결해낸 점이 바로 지금의 스킴스를 만든 결정적인 매력이었죠.
우수한 품질과 편안한 착용감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온라인 란제리 판매업체 '허 룸'(Her Room)을 운영하는 토미마 에드마크 최고경영자(CEO)는 과거 타임지 인터뷰에서 "스킴스는 원단이 정말 좋다"며 "아주 부드럽고 미친 듯이 늘어난다. 누가 입어도 잘 맞는다. 보디수트도 저렴한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장식이 아닌 미니멀하고 세련된 디자인도 인기를 끄는 이유입니다.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큼지막한 로고를 자랑하는 브랜드 상품보다 은은한 멋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대부분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로고를 숨기거나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만 봐도 이해가 될 겁니다.

스킴스는 상품 하나하나가 곧 화제가 됩니다. 그중에서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상품이 있습니다. 2023년 출시된 니플 푸시업 브라인데요. 브래지어 일부분이 도드라져 마치 실제 신체 부위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게 특징입니다. 이를 착용한 채로 겉옷을 입어도 속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노린 겁니다.
이 상품이 공개되자마자 일각에서는 경악스럽다는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너무 민망한 데다가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화 한다는 비판이 주였는데요. 의외로 이 상품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주목할 점은 유방암을 겪은 여성들로부터 찬사가 나왔다는 건데요. '잃어버린 신체 부위와 매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는 감격의 반응이 이어진 겁니다. 한 소비자는 스킴스 공식 홈페이지 리뷰에 "12년 전 유방 절제술을 받았다. 어떤 옷을 입어도 예전의 느낌을 되찾아준다. 완벽하다"며 5점 만점에 5점을 줬죠.
앞선 성공이 자신감을 안긴 걸까요? 올해 여름을 앞두고서는 더 파격적인 상품이 나왔습니다. 5월 피어싱 모양까지 추가된 피어싱 니플 푸시업 브라가 출시됐는데요. 성공은 두고 봐야 한다고요? 이번 세일 목록에 포함된 이 상품은 전 색상, 전 사이즈가 품절을 기록했습니다.
과감한 일부 제품 외에도 스킴스는 사랑받고 있습니다. 후디, 쇼츠 등 일상에서 편히 입을 수 있는 제품을 잇달아 출시하면서 현지 젊은 세대의 '기본템(기본 아이템)' 대표 브랜드로도 거듭났는데요.
이러한 상품성과 이슈 몰이는 실적에도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2022년 5억 달러였던 스킴스의 매출은 2023년 7억5000만 달러로 증가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매출이 약 1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데요. 브랜드 가치 또한 40억 달러에 이를 정도입니다. 단순히 속옷을 잘 만든 덕분이라기보다는 상품 하나하나에 트렌드와 메시지, 감정까지 담아낸 전략이 통한 겁니다.

브랜드는 출범 초기부터 SNS와 셀럽 마케팅, 인플루언서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해왔습니다. 킴 카다시안 본인이 캠페인 모델로 등장하는 건 물론이고, 각국의 다양한 체형·성별·배경을 가진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왔죠.
특히 화제가 된 건 그룹 블랙핑크 멤버 로제가 참여한 밸런타인데이 캠페인입니다. 로제는 핑크, 레드 컬러의 귀여운 란제리, 파자마 세트를 입고 포즈를 취했는데요. 사랑스럽고 발랄한 로제 특유의 매력에 딱 맞는 컬렉션이었죠. 로제가 착용한 제품은 즉각 품절되는 등 인기를 끌었습니다.
킴 카다시안 역시 만족감을 감추지 않았는데요. 그는 "모든 스킴스 캠페인은 아이코닉하다. 로제는 그 이미지에 완벽히 부합한다"며 "그의 우아함과 에너지는 독보적이다. 2025년의 발렌타인 그 자체다. 이번 컬렉션은 로맨틱하고 유쾌하며 개성이 가득한데 로제가 그 무드를 완벽히 담아냈다"고 밝혔죠.
로제 역시 스킴스의 팬이었습니다. 그는 1월 보그 인터뷰에서 "스킴스의 소프트 스무딩 심리스 컬렉션을 좋아한다. 어떻게 그렇게 부드러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여러 번 구매하고 싶었는데 항상 품절이더라. 한 번 재입고 날 홈페이지에 접속해 모든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는데, 이미 다 품절인 적도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고 전하기도 했죠.
스킴스는 로제뿐 아니라 사브리나 카페 더 라나 델 레이, 찰리 XCX, 아이스 스파이스, SZA 등 잘파 세대 사이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연예인들을 모델로 기용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다양한 협업도 매력 포인트인데요. 특히 스포츠 업계와의 컬래버레이션이 눈길을 끕니다. 2023년에는 미국프로농구(NBA), 미국 여자프로농구(WNBA)의 공식 언더웨어 스폰서로 나섰고요. 올해 2월에는 나이키와 손잡고 새로운 여성용 운동복 브랜드 '나이키스킴스'를 론칭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애초 나이키는 올해 5월 일부 소매점과 온라인을 통해 해당 브랜드를 선보이고 2026년엔 글로벌 시장에 본격 출시할 계획이었는데요. 지난달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생산 지연 문제로 공식 출시가 올해 말로 늦춰졌습니다. 나이키와 스킴스 모두 이번 협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만큼, 향후 베일을 벗을 제품군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나이키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1년 넘게 비밀리에 전담 조직을 꾸린 것으로 알려진 바 있죠.
24일에는 미국 1부 배구 리그 리그원 발리볼(LOVB)과 새로운 파트너십을 발표, LOVB의 라운지웨어, 언더웨어, 슬립웨어의 공식 파트너가 됐습니다. 이번 파트너십을 통해 스킴스는 LOVB 커뮤니티와 선수 주도 행사, 리그 전체 활동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예정인데요. 양측은 "프로 여자 배구의 성장을 촉진하고 소녀와 여성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고 밝혔죠.
이처럼 스킴스는 '내가 입을 수 있는 럭셔리', '나도 닮을 수 있는 쿨한 이미지'를 적극 활용하며 Z세대의 정체성 소비, 소속감, 공감대를 정확히 짚어냈습니다. 이너웨어를 넘어 라운지웨어, 드레스, 수영복, 액세서리, 남성복으로 상품군을 넓혀가며 이제는 속옷 브랜드가 아닌 일상 속 감각적인 브랜드로 이미지를 전환하고 있죠.
특정 체형이나 인종을 위한 브랜드가 아니라, '모든 몸을 위한 브랜드'라는 일관된 메시지. 그리고 그 메시지를 전파하는 진정성 가득한 스토리텔링 방식. 스킴스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데요. 인기 제품의 경우 벌써 품절을 기록한 만큼, 이번 세일을 계기로 스킴스를 접하고 싶다면 빠른 클릭이 생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