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원화를 담보로 디지털 자산을 민간이 발행하고 결제·유통까지 이어가는 모델이다. 한국은행은 이에 대해 비은행권 발행이 외환시장·통화정책에 혼선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려는 타당하지만, 문제는 방향보다 역할의 구분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민간이 설계하고, 정부는 안전판을 제공하는 구조여야 한다. 디지털 자산 시대에는 중앙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없으며, 시도조차 비현실적이다. 민간의 기술력과 속도를 감당하지 못한 채 과잉 규제로 대응하면 결국 시장은 다른 나라로 떠날 뿐이다.
과거 2017~2018년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무차별 규제가 그랬다. 당시 국내 거래소의 90% 이상이 문을 닫았고, 기술 인재는 해외로 빠져나갔다. 지금도 세계 최대 블록체인 플랫폼 중 상당수는 한국이 아닌 싱가포르, 두바이 등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제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할 때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에서 정부와 한국은행의 역할은 ‘관리자’이지 ‘주체’가 아니다. 누가 발행하느냐보다, 어떻게 안전하게 굴러가도록 관리할 것인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일부 민간 금융사와 핀테크 기업들은 원화 연동 디지털 토큰을 기반으로 한 결제·환전 플랫폼을 테스트하고 있다. 기술은 충분하고, 수요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이들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니라 길목을 통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주권의 최후 보루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 시장에서까지 직접 나설 이유는 없다. 민간이 주도하되, 발행 규모·준비금 요건·회계투명성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만 제시하면 된다.
정부는 제도화된 운동장을 만들고, 민간은 그 안에서 뛰도록 하면 된다. 지금처럼 우려만 앞세워 ‘금지부터 하고 보자’는 접근은 결국 또 다른 기회를 날릴 뿐이다.
디지털 화폐는 이미 글로벌 경쟁의 영역이다. 미국, 싱가포르, 홍콩 등은 민간-공공 협력모델을 구축해 디지털 통화 실험에 나섰다. 우리는 아직 첫 단추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묻지 말자. "이걸 허용해도 되냐"고. 대신 이렇게 묻자. "어떻게 하면 민간이 안전하게 이끌 수 있도록 제도화할 수 있을까."
기술을 막을 수는 없다. 막으려는 순간, 한국은 또다시 뒤처진다. 스테이블코인의 미래는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주도권을 민간에 넘겨줄 용기를 가질 때 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