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1기 내각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 장관으로 지명됐던 이진숙 후보자가 낙마한데 이어,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도 자진사퇴했다.
두 후보자에 대한 문제제기는 국민의 상식과 눈높이에서 당연히 제기돼야 했던 질문들이다. 이진숙 후보자의 제자 논문 표절 의혹과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전문성 부족은 공직자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강선우 후보자 역시 보좌진 갑질 및 취업 방해 의혹이 불거지는 등 다각도로 지적을 받았다.
공직은 엄중한 자리다. 그에 걸맞은 능력, 책임감, 그리고 도덕성이 요구된다. 이 점에서 두 후보자 모두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지 못했으며, 그에 따른 책임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안이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비단 개인의 자격 논란에만 있지 않다. 이들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 리더십’이라는 질문 앞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초기 여성 내각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는 단순한 상징을 넘어, 다양한 성별과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국정에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포용적 가치 선언이었다. 하지만 출범 직후부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애초부터 여성 장관 비율은 30%를 채우지 못했고, 이진숙ㆍ강선우 후보자의 낙마 이후 그 수치는 더 낮아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적임자가 없는데 어떻게 채우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실제로 대통령실 인사라인에서도 여성 인재풀의 부족으로 상당한 고민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바로 그 부분이다. 왜 매번 여성 후보자 인선에만 '기근'이 반복되는 것일까.
이는 단지 특정 정권, 특정 대통령의 인선 전략이 미숙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가 오랫동안 ‘여성 리더’를 체계적으로 길러내지 못한 구조적 실패의 결과다.
과거 정부들도 여성 고위직 확대를 천명했지만, 실질적 성과로 이어진 경우는 드물었다. 선언은 있었지만, 제도적 기반은 허술했던 탓이다. 여성 고위 공무원을 위한 리더십 교육은 형식적으로 운영됐고, 승진 경로는 남성 중심의 문화와 평가기준에 따라 정해졌다. 민간 부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기업, 전문직, 학계 등 대부분의 고위직은 여전히 남성 중심 구조다. 다양성을 외치지만, 결과적으로 리더십 파이프라인은 성별에 따라 철저히 나뉘어 있다.
"요즘 시대에 여성이라고 승진 못하는 건 아니다"라고도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이 전제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개념이 과연 현실에서도 유효한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권력과 자원은 대부분 남성이 점유해왔다. 그 안에서 여성들이 같은 속도로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출발선부터 달랐고, 기회에 접근할 수 있는 경로도 달랐다. 리더십을 증명하기까지 여성에게는 남성보다 더 많은 경력, 더 많은 성과, 더 많은 설명이 요구되곤 한다.
이는 여성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회의 불균형과 자원의 편중, 그리고 암묵적인 차별 구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결국 우리는 여성 리더의 부재를 개인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여성 내각 30%는 단지 숫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확대하고, 국민을 대표하는 구성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 수치를 채우기 위한 단기적 인선 전략은 한계가 명확하다. 더 이상은 "쓸 사람이 없다"는 말이 핑계가 되서는 안된다.
'여성이라서' 특별히 배려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공직은 평등하게 경쟁해야 하는 자리이며, 여성 후보자 역시 그 기준 위에서 공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경쟁이 ‘보이지 않는 불균형’ 위에서 이뤄지고 있다면, 우리는 문제를 단지 자격 논란으로만 축소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의 여성 인사 공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이 다시 정비할 기회라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