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하반기 고대역폭메모리(HBM) 승부처로 꼽히는 HBM4(6세대)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HBM4에 적용되는 10나노급 6세대(1c) D램의 수율(양품 비율)도 안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 족쇄를 완벽히 해방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 재건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홍콩 증권사 CLSA는 최근 자사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1c D램 양산을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 주문을 곧 집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c D램 공정은 현존하는 가장 최신의 공정이다. 10나노급 D램 공정 기술은 ‘1x(1세대)→1y(2세대)→1z(3세대)→1a(4세대)→1b(5세대)→1c(6세대)’ 순으로 개발되는데, 세대가 높아질수록 회로 선폭이 촘촘해지고, 용량과 성능이 향상된다.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경쟁사는 HBM4에 1b D램을 적용하지만, 삼성전자는 1b D램을 건너뛰고 1c D램을 선제적으로 적용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수율 역시 빠르게 안정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CLSA는 “1년 전 1c D램 수율은 상당히 저조했지만, 이제 약 50% 수준의 수율에 도달했다”며 “이러한 진전은 주로 핵심회로 재설계, 다이 크기 확장 등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본격적인 양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말 1c D램의 ‘양산 준비 승인’(PRA) 절차를 마쳤다. PRA는 제품이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 전 내부적으로 생산 준비가 제대로 됐는지 판단하는 절차다. 생산을 위한 시설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관측되는 대목이다.
HBM4 시장은 하반기부터 개화하기 시작해 내년에는 주류 제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HBM4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과 AMD의 차세대 AI 칩 ‘MI400’시리즈에 탑재된다.
삼성전자는 그간 HBM 시장에서 구겼던 체면을 HBM4에서 회복하겠다는 목표다. 실제로 AI 큰손인 미국 엔비디아 공급이 늦어지면서 시장 점유율도 줄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1분기 매출액 기준 삼성전자의 D램 시장 점유율은 34%로, 33년 만에 처음으로 SK하이닉스(36%)에 밀렸다.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지난달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HBM을 주요 주제로 삼고 엔비디아용 HBM3E(5세대) 12단 상용화 시점, HBM4 양산, D램 설계 개선, 시장 점유율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HBM4의 성공적인 시장 안착이 현재 실적 부진을 해결할 기회로 보고 있다. HBM4부터는 맞춤형(커스터마이징) 트랜드로 전환되는 만큼 초기에 고객을 많이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1c 공정 개선을 통한 HBM4 기술 경쟁력 확보 등의 모멘텀 발생이 필요할 것”이라며 “3분기는 이러한 모멘텀이 가시화하거나 검증될 수 있는 시기”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재용 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면서 반도체 사업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은 17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특히 올해 삼성전자가 인수합병(M&A) 카드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 사업에서도 의미있는 투자가 나올지도 주목된다.
고(故)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3월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반도체 분야는 주요 국가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승인 이슈도 있어 M&A에 어려움이 있다”면서도 “반드시 성과를 이루겠다. 이를 위해 관련 조직을 갖추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