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악성 민원의 트렌드는 ‘메신저를 공격하라’인 듯하다. 관공서가 민원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해당 공무원의 태도나 절차를 꼬투리 잡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학부모가 담당 교사에 대해 연쇄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는 일도 발생한다.
21일 교육계에 따르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서이초 교사 순직 2주기를 맞아 전국 유·초·중·고 교원과 교육 전문직 4104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전체 응답자 중 올해 상반기에 교권 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사람은 1981명(48.3%)에 달했지만, 실제 교권 침해를 신고한 경우는 4.3%(86명)에 불과했다. 이유는 ‘신고하면 오히려 아동학대 신고나 민원 발생이 우려돼서’(70%)가 가장 많았다.
학교폭력 가해자의 부모가 선생님을 무고죄나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경우는 흔하다고 한다. 한 교육청에는 자녀의 학교생활에 불만을 품은 학부모가 담당 교사뿐 아니라 행정실, 교육감실에도 민원을 제기해 몇 달간 인력을 마비시킨 일이 있었다.
해당 민원인은 학교에 들어가 욕설을 퍼붓고, 교육청에도 “아이 인권을 침해했다”며 담당 교사를 고소했다. 하지만 자기 자녀의 학교폭력을 은폐하려는 시도로 이 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도소 수감자 중에서도 교도관을 의도가 뻔한 민원이 많다. 교도소에 들어오면서 맡긴 돈을 10원 단위로 소재파악을 해 달라며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이를 악성 민원으로 신고할지, 신고해도 검찰이 재판이 넘길지, 법원은 악성 민원으로 인정하지도 불분명하기 때문에 교정직 공무원들은 그냥 넘길 수밖에 없다.
한 보건소에서는 방역 지침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하루에 수십 통씩 전화해 업무에 큰 지장을 준 사례가 있었는데, 결국 해당 직원이 정신적 고통으로 병가를 냈다.

비교적 민원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는 법원이나 검찰에도 일부 사건 당사자나 피고소인들은 담당 판사, 검사에게 끊임없이 탄원서를 보낸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기피신청’을 반복적으로 제기해 업무를 방해하기도 한다.
한 지방법원에서는 민원인이 1년간 80건이 넘는 진정서·민원서를 제출하며 특정 판사를 상대로 인신공격성 비방을 일삼은 사례도 있었다. 그는 심지어 재판 일정마다 법원 게시판에 비방 대자보를 붙이거나, 출근길에 따라붙기도 했다.
한 검찰청에도 수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무혐의는 검사의 직무유기’라며 반복적으로 감찰을 청구하거나, 검사실로 전화를 걸어 폭언을 일삼는 등 피해가 보고되고 있다.
악성 민원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동화성세무서 사망 사건, 김포시 공무원 사망 사건을 보더라도 악성 민원인들은 교통혼잡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해당 공무원의 신상을 유포하고, 업무 전화로 집요하게 괴롭힌다.
이런 악성 민원은 민원이라는 외형은 갖췄지만, 결국 비상식적인 요청이나 폭언‧욕설 내지 범법행위를 동반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셈이다.
이보라 변호사는 “악성 민원이 공무원 개인을 제물로 삼는 비이성적 표출로 변질되고,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며 “민원인을 보호하던 법과 제도가 이제는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손질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