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는 기업 성과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스페인 기업서 신청률 1%로 무산되기도
급여 축소·경력 우려 등 발목

이재명 정부 들어 주 4.5일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해외에서는 이미 주 4.5일제를 넘어 주 4일제나 주 36시간 근무제 등을 테스트하고 평가하는 국가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10월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연구소와 아이슬란드 지속가능민주연합(ALDA)은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하고 표준 근무 시간을 주 40시간에서 주 36시간으로 줄인 후 아이슬란드 노동자 삶의 질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결론지었다. 보고서는 2021년과 2022년 아이슬란드 사회노동부와 대학 연구소 등이 협업해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됐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근무 시간이 줄어든 사람 62%가 자신의 일정에 더 만족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노동자 97%는 시간 단축으로 일과 사생활의 균형을 맞추기 더 쉬워졌거나 적어도 과거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근무 시간 단축으로 사생활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42%를 기록했고 오히려 늘었다고 답한 비율은 6%에 불과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구드문두르 하랄드손 연구원은 “이 연구는 실질적인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며 “아이슬란드에는 근무시간 단축이 널리 퍼져 있고 경제는 여러 지표에서 강력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영국에서도 주 4일제가 서서히 노동 시장에 스며들고 있다. 올해 초 NPR통신은 현재 영국에서 200개 기업이 주 4일제를 채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전체 노동자 수는 5000명을 넘는다. 기업들은 임금 삭감 없는 4일·32시간 근무인 ‘골드 스탠다드’와 4일·35시간 근무인 ‘실버 스탠다드’로 나눠 진행 중이다. 가장 많이 참여하는 업종으로는 마케팅과 홍보, 자선 단체, 비영리 단체 등이 있다.
이달 보스턴칼리지와 포데이위크파운데이션이 17개 기업 950명 이상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약 절반이 직무 만족도가 향상했다고 답했고 62%는 ‘번아웃 감소’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45%는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했다.
노동자 개인만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 투자 전문매체 벤징가는 “충격에 빠뜨릴 수 있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기업 중 몇몇은 근무시간을 줄인 후 업황이 개선됐다고 보고했다는 것”이라며 “다른 기업들은 전년 대비 병가나 개인 휴가가 30% 감소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런던에 본사를 둔 소프트웨어 기업 브랜드파이프다. 근무시간을 35시간에서 28시간으로 줄였는데, 매출은 129.5% 증가하고 직원들의 연차 사용은 100% 감소했다고 한다. 일주일에 28시간 일하면 굳이 연차를 쓰면서까지 쉬지 않아도 된다고 직원들이 판단했다는 의미다.
물론 근무시간 단축이 무조건 긍정적인 효과만 내는 것은 아니다. 스페인 통신기업 텔레포니카는 주 4일제 시범 운영을 하기도 전에 좌초했다. 기업이 유연근무제 신청을 받았지만, 여기에 응한 직원은 전체 1%뿐이었다. 이유는 급여 삭감에 있었다. 노조에 따르면 유연근무제를 신청한 직원들은 주당 5시간 30분 덜 일하는 대신 약 12% 감소한 급여를 받게 되는 거였다.
경력 개발을 꿈꾸는 직원들에게도 부정적이었다. 유연근무제를 거부한 한 직원은 “직원들 사이에선 회사에서 성장하고 싶은 마음과 유연근무제를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모순돼 보였다”며 “내가 마흔 살이고 더는 커리어를 성장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인지하는 상황이라면 100% 수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근무시간 단축 실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폴란드는 6월 30일부터 급여 전액 유지를 조건으로 주 4일제 실험을 시작했다. 당국은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직원들이 가족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통해 출생률 상승과 사회적 유대감 강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밖에도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 등 곳곳에서 일과 사생활의 균형 등을 위해 근무시간 단축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