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케데헌’ 현상이 촉발한 한류의 진화

입력 2025-07-1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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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근 한국외대 컬처테크융합대학장 / 한국영화학회장

‘K팝·애니’ 결합 문화파급력 키워
한국 넘어 글로벌산업으로 성장
초국가·탈민족 가능성 고민할 때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자 곧바로 글로벌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했다. 자료에 따르면 한 달도 되지 않아 9300만 시청 시간을 넘겼고, 5600만 시청 횟수를 기록했다. 이른바 ‘케데헌’ 현상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K팝 아이돌을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이 이렇게 인기몰이를 할 줄은 미처 몰랐다.

‘헌트릭스’라는 이름을 가진 K팝 걸그룹은 비밀스러운 사명을 수행한다. 이들은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과 악령의 세계를 가르는 경계인 ‘혼문’을 지켜내는 수호자다. 악령은 ‘사자보이즈’라는 정체불명의 보이그룹을 내세워 ‘혼문’을 무너뜨리려 한다. 헌트릭스는 한국 여성 엔터테이너의 기원인 무당, 최초의 걸그룹인 1950년대 김시스터즈, 2000년대 SES를 계승하면서 사자보이즈에 맞서는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케데헌’은 글로벌 콘텐츠의 지형에서 K팝이 확장되고 변주되는 좋은 사례다. 애니메이션의 상상력이 K팝이라는 음악 장르와 결합하면서 전통적인 한류와는 다른 차원의 문화적 파급력을 만들어 내고 있다. 헌트릭스라는 아이돌 그룹은 현실의 K팝 아이돌을 그대로 모방하는 서사, 팬덤, 플랫폼 전략의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이런 허구적 현상은 어쩌면 가상 아이돌 헌트릭스를 향한 현실의 팬덤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

‘케데헌’은 흥미로운 실험이다. K팝 여성 아이돌이 악령을 무찌르는 전사로 등장한다는 이야기는 얼핏 보기에 낯선 설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오늘날 글로벌 콘텐츠가 장르의 경계와 문화의 위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는 점에서 보면 참신한 시도다. ‘케데헌’ 현상은 동시대 한류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몇 가지 논의를 불러낸다.

첫째, ‘케데헌’은 미국 할리우드의 소니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했다. K팝이라는 문화 코드가 중심이지만, 기획, 투자, 제작, 유통이 한국 외부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한류의 생산지가 더 이상 한국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류는 본래 한국을 중심으로 기획, 제작되는 대중문화이자 문화콘텐츠다. 그러나 이제 한류의 기획과 제작이 한국의 전유물이 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둘째, 이런 흐름은 한류를 문화민족주의의 관점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환기한다. 한류는 ‘한국적인 것’을 만들어 수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미 글로벌 자본, 기술, 담론, 팬덤의 협업을 통한 중층적 네트워크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 오늘날 한류는 국가 브랜드나 문화외교의 도구라기보다 글로벌 문화산업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한류는 다양한 문화와 상호작용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재정의하는 유기체가 되었다.

셋째, 이런 흐름은 한류라는 이름이 원래부터 가져온 개념의 이중성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지금까지 한류는 ‘한’의 관점에서 수용되어 왔다. 이제 한류는 ‘류’에 더욱 중점을 두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한’은 국가, 민족, 지역, 내부의 정체성을 대표하지만, ‘류’는 초국가, 탈민족, 글로벌, 외부의 혼종성을 드러낸다. 한류는 고정성과 유동성, 중심성과 주변성, 생산과 수용이라는 이중의 의미 체계를 동시에 내포한다. ‘케데헌’은 이런 이중성이 한류의 생산과 유통의 과정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류를 ‘한국 문화’로 소유하거나 대표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새로운 문화적 혼종성과 협업의 가능성을 어떻게 실현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케데헌’은 이런 전환을 예고하는 징후다. 한류의 미래는 더 이상 단일한 기원이나 중심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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