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변호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

입력 2025-07-15 18:32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천주현 천주현법률사무소 변호사

최근 이석태 전 헌법재판관의 글 ‘헌법의 시간’이 법조계에서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재판관 지명 논란, 이재명 후보 사건 등 일련의 헌정 위기 속에서 헌법재판소는 통합과 절제를 바탕으로 헌법적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제언을 담고 있다.

이 전 헌법재판관이 말하려는 것은 헌정 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법률가와 헌법기관은 개인의 유불리보다 국가 공동체의 통합, 헌법 정신의 수호, 관용과 절제라는 가치를 우선시해야 하며, 특히 헌법재판소는 그 중심에서 일관된 헌법적 기준과 품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글의 후반부에는 헌법재판소가 보여준 통합적 위상의 사례들이 소개되지만, 초반에는 이 전 재판관이 변호사라면 주목해볼 만한 이야기를 꺼내며 시작한다. 헌법재판관 퇴임 뒤 마련된 담소 자리에서, 한 변호사가 “소송은 이길 때도 지는 때도 있는데, 꼭 승소 가능성이 큰 사건만 맡아야 하느냐”고 물었고, 이 전 재판관은 이렇게 답했다. “원칙적으로는 승소 가능성이 절반 이상인 사건을 맡는 것이 좋다. 패소하면 의뢰인에게도 미안하고, 변호사의 경력에도 좋지 않다. 특히 공적인 재판은 선례로 남기 때문에 그 부담이 작지 않다. 따라서 사건이 공적 성격을 띠는지, 아니면 사적인 성격인지 잘 판별하고, 후자일 경우엔 패소에 대비한 전략도 미리 세워두는 게 바람직하다.”

이 말은 변호사라면 곱씹어볼 만한 조언이다. 현실적이고, 실무적인 감각이 묻어난다. 그러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승소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수임을 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법률 조력을 구할 수 있는 길이 그만큼 좁아지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모든 사건의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다. 때론 판사가 다른 시각을 가질 수도 있고, 변호사가 그 생각을 바꾸도록 설득할 수도 있다. 그것이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다.

변호사윤리장전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사건 수임을 거절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단지 패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건을 외면하는 건 윤리적으로도 피해야 할 태도다. 게다가, 비록 재판에서 패소했더라도 의뢰인은 소송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는다. 자신의 억울함을 정리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그것이 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배운다. 변호사의 조력을 받으며 감정적으로 위로받는 경험도 한다.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현실을 마주하는 과정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다.

또, 패소한 사건이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소송 과정에서 발견된 증거나 사실이 새로운 절차를 여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전 재판관의 조언대로 패소에 대비한 전략을 갖춰두는 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의뢰인의 권익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자세다.

패소가 변호사의 경력에 꼭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건이든 진지하고 치열하게 대응한 흔적은 그 자체로 경력이 된다. 오히려 모든 사건을 기계적으로 선별하고, 고위험 사건을 회피하는 태도는 변호사의 직업적 공공성을 저해할 수 있다.

성범죄나 강력범죄처럼 꺼리는 사건을 변호사가 기피하기 시작하면, 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의 조력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선 시스템은 자원과 시간에 한계가 있다. 사선변호인의 촘촘한 조력이 있어야만 정의로운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

공적 재판이든, 사적 재판이든 법은 살아 있는 제도다. 반복된 합헌 결정이 어느 순간 위헌으로 바뀌기도 한다. 형사사건 성공보수가 한순간에 무효가 된 판례도 있다. 이런 변화는 누군가 끝까지 두드렸기 때문에 가능했다. 변호사는 단지 사건을 해결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법률 제도의 개선을 이끌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변호사법 제1조는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함을 사명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그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질서 유지와 법률제도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제2조는 “변호사는 공공성을 지닌 법률 전문직으로서 독립하여 자유롭게 직무를 수행한다”고 선언한다.

결국 변호사는 승패보다 더 큰 것을 보고 일해야 한다. 질 것 같은 재판도 수임할 수 있어야, 헌법이 말하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라는 가치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헌법의 시간 속에서 변호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쯔양·닥터프렌즈·닥터딩요와 함께하는 국내 최초 계란 축제 '에그테크코리아 2025' 개최
  • 달러가 움직이면 닭이 화내는 이유?…계란값이 알려준 진실 [에그리씽]
  • 정국ㆍ윈터, 열애설 정황 급속 확산 중⋯소속사는 '침묵'
  • ‘위례선 트램’ 개통 예정에 분양 시장 ‘들썩’...신규 철도 수혜지 어디?
  • 이재명 대통령 직무 긍정평가 62%…취임 6개월 차 역대 세 번째[한국갤럽]
  • 겨울 연금송 올해도…첫눈·크리스마스니까·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해시태그]
  • 대통령실 "정부·ARM MOU 체결…반도체 설계 인력 1400명 양성" [종합]
  • ‘불수능’서 만점 받은 왕정건 군 “요령 없이 매일 공부했어요”
  • 오늘의 상승종목

  • 12.05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37,679,000
    • -0.55%
    • 이더리움
    • 4,737,000
    • -0.34%
    • 비트코인 캐시
    • 858,000
    • -2.33%
    • 리플
    • 3,122
    • -3.34%
    • 솔라나
    • 208,900
    • -1.88%
    • 에이다
    • 658
    • -1.94%
    • 트론
    • 427
    • +2.64%
    • 스텔라루멘
    • 377
    • -0.26%
    • 비트코인에스브이
    • 31,160
    • -0.89%
    • 체인링크
    • 21,310
    • -1.11%
    • 샌드박스
    • 221
    • -2.64%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