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한데 빵! 무슨 말인지 알겠지?"
"(얼씨구?) 넵, 알겠습니다!"
최근 우리의 알고리즘을 장악한 햄스터 한 마리가 있습니다.
황금빛 부드러운 털, 씰룩쌜룩 귀여운 콧잔등, 순진한 얼굴과 상반되는 시니컬한 마음가짐(?)이 매력 포인트인 이 햄스터의 이름은 '정서불안 김햄찌'(이하 '김햄찌').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만든 햄스터입니다.
AI로 동물 캐릭터를 형성해 재미를 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은 이미 많습니다. 동물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짱구는 못 말려 스타일'로 바꿔보기도 하고요. 시바견이 설원을 배경으로 도마 위에서 파를 썰거나, '아름답고 미운 새~' 노래에 맞춰 반려동물이 춤을 추는 등 생생한 모습이 영상으로 재현되곤 했죠.
그중에서도 '김햄찌'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SNS에서는 "김햄찌 알아?", "오늘 자 김햄찌 영상" 등의 소개 글이 잦게 게재되고요. 입소문을 타면서 유튜브에 등장한 지 2개월여 만에 40만 명 이상의 구독자를 끌어모았죠. 심지어는 광고 계약을 체결, 특정 상품을 영상에 노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애청자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유튜브가 AI 관련 새 정책을 내놓은 건데요. AI로 만든 콘텐츠에 대한 수익 창출 자격 기준을 바꾸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정책, '김햄찌'에도 영향이 있을까요?

'김햄찌'가 귀여운 모습으로만 승부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유튜브 채널 '정서불안 김햄찌'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정서 불안한 햄스터', 회사에 다니는 디자이너 햄스터입니다. 상사의 모호한 지시를 받고 속으로 '얼씨구?'라고 생각하지만 이내 "넵! 알겠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하고,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는 "진짜 X 같은 하루였다. 학씨!"를 외치죠. 로또에 당첨됐을 때 어떻게 당첨금을 수령할지 상상력을 가동하고, 다이어트 중에도 계란빵, 마라샹궈, 버블티를 먹으며 "계란은 살 안 쪄", "푸주는 살 안 쪄", "녹차는 살 안 쪄"라며 자신을 속여 웃음을 자아냅니다.
흔히 'MZ 같다'고 생각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는 회사에서 실수해 상사에게 꾸중을 듣는 김햄찌의 모습이 담겼는데요. 김햄찌는 상사에게 "더욱 주의하겠다"며 고개를 숙이고, 전화 통화로 실수를 수습하기 위해 애씁니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던 그는 집에 도착해서야 눈물을 쏟아내는데요. 창피해하다가 '다음에 안 그러면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가 또다시 자책하는 모습, 우리와 같아 서글픈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61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한 이 영상에는 18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는데요. "회사에서 한소리들은 날 퇴근하던 내 모습과 겹쳐 보여서 울컥한다. 공공장소라서 감정 억누르면서 집에 와서 씻고 눕자마자 눈물 펑펑… 직장인이라면 한 번씩 겪었을 법한 에피소드라서 더 공감된다", "누가 뭐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싫어지는 때가 있다", "슬픈 날 뒤엔 활짝 웃는 날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꼭 오늘의 나 같아서 나도 모르게 감정 이입해서 봤다" 등 사회 초년생부터 연차가 쌓인 직장인들의 공감 댓글이 쏟아졌죠.
'김햄찌'의 인기 비결도 여기 있습니다. 단순히 리얼한 그래픽, 발전한 AI 기술이 아니라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밖에 없는 '생활밀착형 스토리', 공감대가 인기의 핵심이죠.
'김햄찌'가 진행한 큐앤에이(Q&A) 영상에 따르면 채널 운영자는 30대의 여성 디자이너입니다. 슬프게도 영상 속 에피소드는 실생활에서 상당 부분 영감을 얻는다는데요. 영상을 만들게 된 계기 역시 위로를 받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영상을 만드는 방법에 관해서도 설명해 눈길을 끌었는데요. 챗GPT, 소라로 이미지를 만들고 하이루오AI 등 영상 생성형 AI로 생명력을 불어넣은 뒤 직접 녹음을 하고 캡컷을 사용해 편집을 거친다고 말했죠.
명확한 콘셉트, 이해와 공감을 자아내는 기획, 빛나는 연출로 '김햄찌'는 AI가 만든 '저렴하고 짧은 영상'이 아니라 요즘 사람들의 감성을 정조준하는 콘텐츠로 떠올랐습니다.
해당 채널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유사 채널도 등장했죠. 햄스터 대신 토끼, 쿼카, 고슴도치 등 다른 동물 캐릭터를 내세우는 방식인데요. 김햄찌의 인기를 따라잡기엔 부족하다는 냉철한 평가도 나옵니다.

그런데 최근 '김햄찌' 채널에 적지 않은 우려가 쏟아졌습니다. 유튜브의 정책 예고 때문이었죠.
10일(현지시간)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더 버지, 테크크크런치 등에 따르면 유튜브는 유튜브 파트너 프로그램(YPP) 가이드라인에 따라 AI를 활용해 제작된 반복적이고 대량 생산된 콘텐츠에 대한 수익 창출을 제한하는 새 정책을 15일부터 도입합니다.
아직 명확한 정책 내용이 제시되지는 않았습니다. 유튜브는 기존 정책의 소폭 업데이트라고 밝히며 '반복적', '대량 생산', '진정성' 등 콘텐츠와 제재 기준, 적용 범위를 더 명확히 제시하겠다고 예고했는데요.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유형의 AI 생성 영상 수익화가 막히는지 발표되지 않은 상황인 거죠.
다만 유튜브가 그간 '오리지널'과 '진정성'을 강조해온 만큼 이번 조치는 반복적이고 대량 생산된 AI 영상이 범람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실로 AI로 만든 저품질 콘텐츠, 이른바 'AI 슬롭(slop)'은 최근 급증한 상황입니다. 더 큰 문제는 AI 기술 발전으로 사실 여부 판단을 어렵게 하는 영상도 수두룩하다는 거죠.
'퍼프 대디'라는 예명으로 잘 알려진 미국 힙합계 거물 션 디디 콤스의 재판 현장이라고 알려진 가짜 AI 영상은 수백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한 바 있고요. 유튜브에서 입소문을 탄 한 살인사건을 다룬 영상 역시 AI로 만든 가짜 영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새가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를 잡아먹는 장면이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 뉴스에도 보도되면서 눈길을 끌었는데요. 이 장면은 AI로 만든 영상임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오른쪽 하단에는 'Veo'라는 표기가 적혀 있는데, 이는 구글 딥마인드에서 지난해 공개한 멀티모달(Multimodal) 기반 생성형 영상 AI의 워터마크입니다.

일부 크리에이터들은 유튜브의 새 정책이 창작 환경을 위축시키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습니다. 리액션 영상이나 클립 기반 콘텐츠까지 제한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죠.
실제로 AI는 이제 이미지, 영상뿐 아니라 음악, 문학 등 콘텐츠 생성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계 1위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월간 청취자 수 100만 명을 넘긴 4인조 록밴드 '벨벳 선다운(The Velvet Sundown)'이 AI 기반 합성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겼습니다. 지난달 데뷔 이후 'AI가 틀림없다'는 의심에 적극적으로 항변하던 이들은 결국 스포티파이 소개란에 "이 밴드는 인간의 창의적 지휘에 따라 작곡, 보컬, 시각화 등 과정을 AI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합성 음악 프로젝트"라고 시인, "속임수가 아니다. 거울과 같다. AI 시대에 음악의 창작성, 정체성, 그리고 미래의 경계에 도전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되는 예술적 도전"이라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죠.
파비안 스테파니 옥스퍼드대 AI 및 노동 분야 조교수는 뉴스위크에 "벨벳 선다운 같은 밴드가 월간 청취자 수 100만 명을 확보하게 되면서 '감동적인 노래는 인간만이 쓸 수 있다'는 오랜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며 "이제 알고리즘도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창의성을 진정으로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AI가 만든 콘텐츠'는 분야를 막론하고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관련 질문도 이어지는데요. 어떤 기준으로 이런 콘텐츠를 분류하고, 어떻게 플랫폼 신뢰도를 높이며 산업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냐는 겁니다.
유튜브 역시 같은 고민 속에서 기준을 다시 세우는 중입니다. 문제는 'AI로 만들었냐, 아니냐'가 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이고 진정성 있는 콘텐츠냐는 점이죠.
유튜브 측에 따르면 수익화 정책은 반복적이고 대량 생산된 콘텐츠, 즉 양산형 저품질 콘텐츠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일 뿐 창작자의 개입이 뚜렷한 콘텐츠는 여전히 보호받습니다. 구체적인 유튜브 정책이 완전히 베일을 벗어야 알겠지만, '김햄찌' 채널 삭제에 대한 걱정은 일단 넣어둬도 좋겠습니다. AI로 제작됐지만 명확한 캐릭터성, 공감을 유발하는 대사와 연출에서는 '김햄찌'만의 진정성이 빛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