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집중호우, 싱크홀, 블로우업 등 기후 재난 현실화
美 환경보호국, 기후변화를 인프라 손상 원인으로 지적
“기후변화 고려한 설계 기준 부재…건설 초기부터 적용해야”

폭우·폭염 등 이상기후가 일상이 되면서 도시 인프라가 이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 단순한 불편을 넘어 도시 기능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는 ‘기후 재난’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국내 사례는 ‘2022년 8월 발생한 수도권 집중호우’다. 10일 국토연구원 ‘기후위기시대 도시침수 예방대책: 2022년 수도권 집중호우의 교훈’ 자료에 따르면 당시 기후변화로 인해 여름철이 길어지며 남쪽의 덥고 습한 공기가 한반도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대기의 수증기량이 증가하며 서울지역에 최고 시간당 141.5mm에 달하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이는 당시 서울시 하수관거 용량인 75mm를 두 배 가까운 양으로 우수관 역류 등으로 인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서울 도심지역 일대 주택‧지하철‧도로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발생한 지하철 역사 침수‧붕괴, 도로 침수로 인한 차량 침수피해 등 재산피해액만 13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폭우는 최근 우려가 커지는 ‘싱크홀’과도 직결된다. 폭우가 쏟아지는 경우 땅속에 고인 물의 양이 갑자기 늘어나며 토양이 쉽게 유실되는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에 더해 노후 수도관 주변 흙이 씻겨 나가며 만들어진 빈공간에 수도관이 떠 있는 형태가 만들어지는데, 이처럼 공중에 떠있는 수도관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터지면 주변 흙이 더욱 빠르게 소실된다. 폭우가 지반을 약하게 만들고 이로 인해 싱크홀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국토안전관리원 공공데이터 등을 바탕으로 싱크홀 현황을 취합한 ‘싱크홀맵’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싱크홀 총 870건 중 호우가 집중된 6~8월 시기 발생할 싱크홀이 차지하는 비중은 55.5%(479건)에 달했다. 6~8월 이외에도 싱크홀 발생은 여름을 향해 갈수록 늘어나고, 겨울이 다가올수록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기도 했다. 여름철에 집중되는 이상기후가 도시 지반 안정성까지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폭염으로 인해 도로 표면의 아스팔트, 콘크리트 등이 팽창하며 도로가 부풀어 오르는 ‘블로우업(Blow-Up)’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2018년 7월 서해안고속도로 일부 구간에서 포장면이 최대 60cm까지 솟아오르는 블로우업이 발생하는 등 당시 연간 8건의 블로우업 현상에 대한 피해보상 및 도로 보수 비용으로 4억 원 이상이 쓰였다.

이처럼 기후변화 영향으로 도시 인프라가 위협을 받는 것은 국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까지 유럽 남부 주요 도시에서는 40도 내외의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피렌체 등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망 과부하로 인한 정전이 발생했으며 프랑스 역시 학교 1300여 곳을 부분‧전면 휴교하고 에펠탑 정상부 출입을 금지했다. 2021년 영국 런던에선 2시간 만에 한 달치 비가 쏟아지며 병원, 지하철, 도로가 침수돼 도시 핵심 인프라가 마비되기도 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 역시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홍수가 교통, 통신 및 에너지 인프라 시스템을 손상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PA에 따르면 빗물 유출과 홍수는 도로, 교량, 터널, 철도 등을 막거나 손상시켜 교통 혼잡과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강우와 홍수는 에너지 공급망 운영을 위협하고 인프라를 손상시켜 정전 사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정전은 의료기관 등 필수 서비스 시설의 에너지 공급을 차단해 안전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EPA는 기후변화로 인한 정전 피해로만 2090년까지 미국에서 연간 8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이건원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폭우는 그 자체로 사회 재난일 뿐만 아니라 도시 인프라의 노후화를 앞당기고 구조적 취약성을 증가시키는 원인”이라며 “현재 폭염 등 이상기후를 고려한 도시 인프라‧건축 설계 기준이 미비한 만큼 기후변화를 고려한 설계 기준을 만들고 이를 건축 설계 초기 단계부터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