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의 우문현답] 아파트가 바꾼 삶의 풍경들

입력 2025-07-08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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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떠들썩하던 함진아비 사라지고
가족 머물던 공간은 투기대상化
빚투 상처받는 ‘영끌’들 안타까워

아마 1990년대 중반 즈음이었던 것 같다. 아파트 아래 위층에 사는 주민들 사이에 민망한 일이 발생했다. 그날은 마침 11층에 함진아비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짓궂기 짝이 없는 신랑 친구들이 신부 집에서 준비한 돈 봉투를 하나씩 밟고 지나가느라, 온 아파트 단지가 떠나가라 요란을 떨자, 보다 못한 9층 주인이 나섰다.

“여기 당신네만 사는 줄 아느냐. 제발 조용히 해달라”고 부탁을 했던 모양이다. 그러자 결혼을 앞둔 쪽에서 “인생에 한 번뿐이니 눈 감아 달라”고 했단다. 그 말에 “우리 아이도 지금 인생에 한 번뿐인 수능시험 공부 중”이라며 양쪽 사이에 큰소리와 삿대질이 오갔다고 했다.

다음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 게시판에 공고문이 붙었다. ‘수능 100일 전에는 소음 발생을 삼가 주십시오.’ 함진아비 들어가는 풍습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갔다.

결혼의례뿐이랴. 아파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쉽게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네 삶의 풍경들이 하나둘 바뀌기 시작했다. 예전엔 병원에서 돌아가실 경우 객사(客死)라 여겨서 집으로 모셨건만, 이젠 집에서 돌아가실라치면 재빨리 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관례가 된 지 오래다. 장례 풍경을 바꾸는 데 아파트가 단단히 한몫했음은 물론이다.

콩으로 메주 띄워 된장 고추장 담그고 간장 달이던 풍경도 사라졌고, 김치도 브랜드 보며 골라 사먹는 세상이다. 아파트가 처음 세워지던 때 입주민들은 김장독을 어디에 묻어야 좋을지 걱정했다 하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다. 처음 수세식 화장실에 양변기가 들어왔을 때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같은 화장실을 쓰는 걸 남사스러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아파트 때문에 3세대가 함께 사는 확대가족이 사라져간 건 아닐 테지만, 아파트야말로 3세대가 함께 살기에 불편한 구조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처럼 소소한 일상의 변화 못지않게 아파트는 내 집에 대한 우리네 생각을 송두리째 바꾼 일등 공신 아닐는지. 예전부터 가장의 소박한 꿈은 가족들이 이사 다니지 않고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한데 이제 집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그 선봉에 아파트가 자리하고 있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우리나라의 주택 보급률은 2024년 기준 102.5%를 기록했지만, 2023년의 주택 자가 보유율은 60.7%(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로 나타났다. 그나마 수도권은 55.1%에 머물러 광역시의 62.3%, 도 지역의 68.6%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주택보급률은 총 주택수를 총 가구수로 나눈 백분율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8년께부터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가보유율은 60% 언저리라는 것은 전체 가구의 절반 정도가 자기 집에서 살지 못한다는 뜻이다. 집이 총 가구수를 넘어섰는데도 집 없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 보니 사람들은 왜 그런지 궁금해진다. 누군가 집을 두 채 이상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자가보유율을 높이는 게 최우선 부동산 정책 과제라는 말이 나온다.

2020년 출판된 사회학자의 책 ‘내 집에 갇힌 사회’에는 흥미진진한 통계 수치와 이에 대한 의미심장한 해석이 다수 등장한다. 일례로 1985년 내 집 마련을 위한 재원의 출처를 보면 자기 자금이 70%, 타인 자금이 30%의 비중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자기 자금은 저축과 주택 매각금이 주를 이루었고, 당시 타인자금은 주택은행 대출을 의미했다. 주택 금융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 내 집 마련은 가족 단위의 소득형성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던 만큼,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재무구조하에서 내 집을 마련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주택 금융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내 집 마련 시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 값을 잡고자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상한액을 6억 원으로 묶는 특단의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급작스레 정책을 내 놓았으니 국민은 필시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내 집 마련에 관한 한 좌우 진영논리가 무색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민노총 간부도 조합원을 위한 복지 차원의 조합주택 보급보다, 서울(기왕이면 강남)의 똑똑한 아파트 한 채를 간절히 원한다지 않던가. ‘한국인은 살기 위해 집을 사지 않는다. 살아 남기 위해 집을 산다’는 엄혹한 현실이 지속되는 한,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를 둘러싼 정부와 시장의 힘겨루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요, 와중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 또한 반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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