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업들 대규모 현지 투자
車·철강, 관세 영향 내년초 윤곽
美 물가 따른 수요 변화에 촉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제품에 대해 25%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공식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이 사실상 ‘3주짜리 유예’ 기간에 돌입했다. 당초 이달 9일로 예정됐던 부과 시한이 다음 달 1일로 연기되며 협상 전략 창구가 열린 셈이다. 이미 미국에 투자를 진행 중인 기업들은 어떤 추가 계획을 내놓을지 고민이 깊다.
8일 재계 관계자들은 트럼프가 밝힌 ‘8월 1일부터 한국산 제품에 상호관세 25% 부과’ 방침을, 사실상 유예 시한이 8월 1일까지 연장된 것으로 해석했다. 이후 한국이나 중국 등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할 경우 25% 이상의 관세 부담이 불가피하다. 향후 양국 간 협상 과정에서 관련 기업들은 ‘미국 내 투자를 확대하라’는 직간접적인 압박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관세 대상 여부를 떠나, 미국 정부가 제조 기반 확대를 명분으로 전방위적인 투자 유인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체적인 트럼프 대통령 기조는 해외 기업들이 백기투항해서 미국에 직접 투자를 하기를 원한 것이고 그 메시지는 일관적”이라며 “이번에 우리 협상단이 직접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관세를 조율할지, 다른 전략을 펼칠지에 따라 상호관세 또는 품목관세가 결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2030년까지 총 37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텍사스주 테일러·오스틴 공장을 확장하고, 로직 칩 연구 및 설계 시설도 구축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 달러를 들여 인공지능(AI) 메모리용 패키징 생산기지와 R&D센터를 건설한다. 이곳에서는 2028년 하반기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AI 메모리 제품의 양산이 시작될 예정이다. 황 교수는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보다는 기존에 반도체 등 우리 기업들이 이미 미국에 투자했던 내용들을 언급하며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 자동차와 철강 업계는 일단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일시적인 유예에 그칠 경우 관세 리스크는 언제든 다시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미국 경기가 나쁘지 않다”며 “일단 경기가 유지된다면 한국 철강 제품 가격이 올라간다 하더라도 미국 내 수요만 유지되면 수출에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정 연구위원은 “물가 상승에 더불어 미국 재정 지출이 많이 늘어났는데 거기에 필요한 재원 조달이 안 되면 미국 인프라 투자가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러면 에너지용 철강재 이런 쪽 수요가 불확실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연구위원은 “물가 상승에 따른 미국 내 수요 부진은 자동차, 가전 수요 위축으로 이어지고 자연스럽게 자동차, 가전 등에 필요한 철강재 미국 수요도 줄어들 것”이라며 “높아진 관세가 한국 철강 수출에 미칠 영향은 6개월 이후, 즉 내년 초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정민 코트라 워싱턴 D.C. 무역관은 “미국의 관세 및 규제 강화로 대미 수출의 42%를 차지하는 자동차, 반도체, 철강·알루미늄 등 핵심 품목이 직접적 영향권에 포함됐다”며 “주요 수출 품목의 대미 수출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국 관세 및 수입 규제 동향 등 수출 구조 재편 가능성에 대한 모니터링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가격 인상에 따른 미국 내 수입품 수요 위축이 전망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유망품목 발굴 및 상품·기술 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규원·심혜정 한국무역협회 연구원은 “자동차와 반도체 등 주요 품목에 대한 북미 공급망을 점검해 원산지 규정 강화에 대비해야 한다”며 “생산비용 절감을 통한 과세 기준가격 최소화, 대체가 어렵고 수요가 비탄력적인 품목 위주의 대미 수출 구조 개편 등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