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로 철 만들고, 폐열로 전기 생산...‘그린 산업’ 실험 시작

기후위기가 산업 지형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탄소중립 압박과 글로벌 규제 강화 속에 정유, 철강, 시멘트, 화학, 자동차 등 고탄소 기반 제조업 전반이 근본적인 전환 없이는 생존조차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구조조정이 아닌 ‘구조 전환’이 산업 현장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7일 산업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고탄소 산업인 철강업계에서는 대전환이 한창이다. 포스코는 석탄 대신 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독자 기술 기반의 수소환원제철(HyREX)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기존 고로(용광로) 방식은 철광석 환원 시 석탄을 사용해 막대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수소를 이용하면 부산물은 물뿐이다. 포스코는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2030년까지 HyREX 기술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은 지난달 월드스틸다이나믹스(WSD) 주최 글로벌 포럼에서 “인공지능(AI)을 통한 인텔리전트 팩토리 실현과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 등 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며 “과감한 도전정신과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책임 있게 성장하는 포스코가 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포스코는 전기로 확대, 그린수소 생산 기반 구축, 배터리 소재 등 저탄소 신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단순히 철을 만드는 기업이 아닌 탄소중립 기반의 소재·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도 급변하는 에너지 질서 속에서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GS칼텍스는 수소, 바이오연료, 전기차 충전, 신재생 전력 거래 등 ‘뉴에너지 부문’을 신설하고 에너지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정유공장 내 탄소 포집·저장(CCUS) 기술 도입도 병행 중이다. 석유화학 업계는 원료 다변화와 저탄소 공정 전환에 나서고 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은 바이오 기반 원료, 수소 연료 사용, 공정의 전력화를 통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있으며 해외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 설비 투자를 확대 중이다.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을 앞두고 탈탄소 전환의 최전선에 서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전동화 전략에 따라 2030년까지 전기차 비중을 전체 판매의 절반 이상으로 확대하고 2045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요 생산기지에는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도입을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 공장은 RE100 인증 추진도 본격화되고 있다.
또한 전기차 생산 확대와 함께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체계 구축, 탄소 배출량 추적 기반 공급망 관리(탄소 트래킹) 등도 강화되고 있다. 자동차 부품사들도 고효율 모터, 경량화 소재, 전력 반도체 등 친환경 핵심 기술 투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RE100,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글로벌 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해외 판매 자체가 막힐 수 있다”며 “전기차 전환은 단순한 상품 변화가 아니라 전사적 제조 체계의 대전환”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10대 고탄소 업종(정유·철강·시멘트·석유화학·자동차·반도체·유리·제지·비철금속·섬유)을 중심으로 맞춤형 구조 전환 패키지를 추진 중이다. 탄소 배출 다량 산업에 대한 연구개발(R&D), 설비 투자 자금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중소·중견 협력업체가 함께 전환할 수 있도록 정책 수단을 강화하고 있다. 또 탄소중립에 기여하는 신산업에 규제 개선과 함께 입지, 금융, 세제 인센티브도 제공한다.
산업계 관계자는 “대기업뿐 아니라 공급망 전체가 바뀌어야 진짜 전환”이라며 “정책도 생태계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위기 시대에 고탄소 산업은 완충지대 없이 바로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며 “탄소를 줄이지 못하면 사업도 투자도 지속하지 못하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