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더위 따른 생산성 저하에 연 136조 손실
신흥국 피해, 글로벌 메가 팩토리 차질로
100년 만의 폭우가 미국 텍사스를 덮쳤다. 유럽은 살인적 폭염과 홍수, 산불로 산업이 멈췄고 한국은 열대야와 집중호우가 일상이 됐다. 극단적인 이상기후가 전 지구적 일상으로 번지면서 경제의 기초 질서와 자본의 흐름까지 바꾸는 ‘기후발(發) 대전환’이 시작됐다는 경고가 곳곳에서 들린다. 극심한 기상이변으로 농업 생산 차질과 노동 생산성 저하, 인프라 붕괴 및 원자잿값 급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기후발(發) 악순환 구조는 갈수록 고착화하는 형국이다. 이는 ‘기후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새로운 경제 질서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본지는 기후위기가 불러온 경제구조의 변화와 자본 흐름의 방향성, 산업별 대응력의 격차가 불러올 시장 내 생존 전략의 차이를 집중 분석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폭염, 홍수와 가뭄 등 극단적인 기상 현상이 잦아지면서 전 세계에 거미줄처럼 얽힌 산업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제조업체들은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물류업계 전문지 프레이트웨이브스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들은 작년 한 해 동안 생산 지연, 운송 차질, 재고 손실, 조달 비용 증가 등 공급망 혼란으로 인해 큰 손실을 봤다.
여기에는 사회·경제적, 지정학적 사건 등 다양한 원인이 작용했지만 특히 인간의 개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상기후가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극심한 기상 이변은 운송, 생산, 농업 전반에 큰 혼란을 일으키며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 지연, 품귀, 비용 증가 등 다양한 형태로 충격이 나타났다.
유럽과 북미 전역을 강타한 폭염은 제조업과 경제 전반에 심각한 피해를 줬다. 공장에서는 폭염으로 인해 기계가 오작동하거나 근로자가 더욱 자주 휴식을 취해야 하는 등 생산성이 악영향을 받았다.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는 더위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로 인한 손실이 미국에서만 연간 1000억 달러(약 136조 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국제노동기구(ILO)도 섭씨 33도 이상에서는 노동능력의 50%를 잃는다고 분석했다. 2022년 중국에서는 폭염으로 전력난이 심해지면서 공장들의 가동중단이 확산하기도 했다.
중국과 인도에서 매년 발생하는 파괴적인 홍수는 교통 인프라를 마비시키고 공장과 물류창고를 침수시키고 있다. 베트남에서도 지난해 태풍 ‘야기’가 덮치면서 수출 허브에 있는 많은 공장과 창고가 피해를 봤다.
이 밖에도 캘리포니아,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발생한 산불 역시 인프라에 직접적인 피해를 줬을 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대기 오염과 호흡기 질환을 유발해 근로자의 생산성과 물류 흐름에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글로벌 제조업 공급망 특성상 한 국가의 생산 차질이 다른 국가의 생산에 영향을 미치는 나비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제조업계는 인건비 비중이 높은 단순 부품을 일부 개도국과 신흥국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맹점 탓에 기후위기 대응이 취약한 신흥국 업체의 생산 중단이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메가 팩토리 생산 차질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 사례가 2011년 태국 대홍수다. 50년 만의 최악의 홍수가 태국을 휩쓸면서 수백 개 회사가 손해를 입었다. 문제는 일본 자동차기업 도요타의 태국 부품 공급 업체들도 침수 피해를 본 것이다. 도요타는 당시 부품 조달 차질로 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북미, 남아프리카 및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도 감산해야 했다.
또 태국은 글로벌 하드디스크(HDD) 주요 생산지인데, 홍수로 인한 품귀 현상으로 글로벌 HDD 가격이 두 배가량 폭증하기도 했다. 정상 가격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약 2년이 걸렸다.
문제는 태국 대홍수 같은 사례가 앞으로 더 자주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공급망 위험관리 전문 리서치업체 에버스트림애널리틱스는 “지난해 기상 관련 공급망 차질의 70%가 홍수로 인한 것이었다”며 “올해도 지정학적 불안과 사이버 공격 등을 넘어 공급망의 가장 큰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