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軍출신 등 135명 민간방산 신청
영관급 94명…장성도 34명 달해
업무 관련성 있으면 재취업 제한
퇴임 전 부서 옮겨 ‘경력 세탁’도
전문성보단 인맥 활용 위해 채용
K-방산의 고속 성장 이면에는 고질적인 인력 수급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군 관련 고위 공직자의 방산업체 재취업이 대표적이다. 안보와 직결되는 방산업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제도적 허점을 이용한 합법적 전관 예우가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방산 수출이 본격화한 최근 2년간 ‘취업 제한’ 판정을 받은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 공직자윤리법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까지 제기된다.
9일 본지가 2022년부터 올해 6월까지 공직윤리시스템에 공개된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 명단 3043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국방부와 방위사업청 등 군 관련 기관 소속 공무원 및 군인 출신이 취업 심사를 신청한 경우는 총 51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의 약 17%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이중 연구원을 제외한 고위급 공무원과 군 출신이 민간 방산업체 취업을 신청한 경우는 총 135건에 달했다. 군 관련 취업 심사 512건 중 26%가 넘는 비중이 민간 방산기업으로 이직을 희망했다는 뜻이다.
이들의 퇴직 당시 소속 기관은 국방부가 12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외 방위사업청(7건)과 국방과학연구소(4건), 병무청(1건), 국방기술품질원(1건) 등이 뒤를 이었다. 퇴직 당시 직위는 육·해·공군의 영관급 장교 출신이 압도적이었다. 대령 51명, 중령 43명으로 두 직급이 전체 신청자의 약 70%를 차지했다.
장성급 장교도 34명에 달했다. 특히 지난해 2월에는 공군 대장이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고문으로, 올해 1월에는 육군 대장이 삼양화학공업 비상근 고문으로 취업 승인을 받았다. 이 외에도 2급 군무원 등 고위직 군 공무원들의 재취업 사례도 일부 확인됐다.
물론 모든 취업 신청이 승인된 것은 아니다.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는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나 업무가 취업 예정 기관과 밀접한 업무 관련성이 있으면 ‘취업 제한’, 법령에서 정한 취업 승인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취업 불승인’ 결정을 내린다.
민간 방산업체 취업 승인 비율은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하는 추세다. 2022년 취업 가능 또는 취업 승인을 받은 비율은 60.6%에 그쳤지만, 2023년부터는 매년 90%를 훌쩍 넘고 있다. 취업 가능은 퇴직 전 맡았던 업무와 취업 예정 직무 간 관련성이 없어 별도 승인 없이 취업이 가능한 상태고, 취업 승인은 업무 관련성은 있지만 정부의 취업 허가를 받은 경우를 말한다.
반면 업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취업 제한 결정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5건, 2건으로 점점 줄더니 지난해 이후로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공직자윤리위 심사 통과를 위해 퇴직 전 일찌감치 무관 부서로 옮기는 ‘경력 세탁’이 알음알음 계속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대형 방산업체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군 관련 출신의 재취업 신청이 가장 많았던 단일 민간 방산업체는 KAI(31건)였다. 이를 포함해 한화 계열사(32건), HD현대 계열사(12건), LIG넥스원(12건) 등 대형 방산업체 재취업 신청 비중이 전체의 60%가 넘었다. 실제 최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을 고문으로 영입했고, 현대로템도 전직 육군 소령을 채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퇴직 공직자의 재취업 자체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과거 군 장교 출신 로비스트의 방산 비리 의혹이 수차례 나왔던 만큼 더욱 촘촘한 법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 같은 문제 의식에 따라 퇴임한 군 장성의 재취업 문제가 불거져 의회에서 장성급의 방산업체 재취업을 금지하는 법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군 경력과 무관해 보이는 건설사나 건축사무소 재취업이 적지 않다는 점도 전관 예우를 보여주는 사례로 지목된다. 이번 본지 분석에서도 군 관련 출신자들이 건설 업종에 취업을 신청한 건수는 총 46건에 달했다.
한 건설업 관계자는 “군 관련 민간투자사업(BTL) 수주에 장교급 출신 네트워크를 활용하려고 이들을 영입하는 경우가 흔하다”며 “사실상 전관예우가 작동하는 구조로, 채용 목적도 전문성보단 인맥 활용에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