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 전쟁 기점으로 K-방산 주목
정책 기반·구조적 경쟁력 강화 숙제

“방산은 적자가 당연한 산업.”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내 방위산업에 따라붙던 고정관념이다. 막대한 개발비와 까다로운 무기체계 인증 절차, 높은 수출 장벽에 더해 내수 시장 규모마저 한정돼 있어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뿌리 깊었다.
삼성그룹이 2015년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등을 한화에 매각한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 않다.
표면적으론 전자·금융·건설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의 일환이었지만,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사업보국’ 철학 아래 적자를 감수하며 이어온 사업이 수익성 악화와 복잡한 규제 앞에서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랬던 방산이 어느새 세계가 주목하는 수출 산업으로 떠올랐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패권 경쟁 등으로 글로벌 무기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한국산 무기는 ‘실속형 무기’로 재조명되고 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방산 수출액은 173억 달러(약 21조2000억 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21년(72억5000만 달러·약 8조3000억 원)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2023년에는 135억 달러, 2024년은 95억 달러로 다소 줄었지만 2020년대 초반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스웨덴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방산 시장에서 한국 무기 점유율은 2.1%로 세계 10위를 기록했다. 2008년 0.5%(19위)에서 네 배 이상 성장한 것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각국이 국방비를 확대하고 러시아산 무기를 대체하려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한국 방산 수출의 전환점이 마련됐다.
같은 해 한국과 폴란드가 맺은 약 137억 달러(약 18조 원) 규모의 대규모 무기 수출 계약이 호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천무 다연장로켓 등으로 구성된 이 계약은 단일 국가와 맺은 수출 계약 중 최대 규모로, K-방산이 ‘패키지 수출’ 모델을 본격화한 첫 사례로 꼽힌다.
이후에도 후속 계약이 연달아 체결됐다. 2023년 12월 K9 자주포와 천무에 대한 2차 계약에 이어 최근 K2 전차 180대에 대한 추가 계약을 체결했다.
2023년에는 필리핀·말레이시아·폴란드 등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과의 FA-50 경공격기 수출 계약도 체결됐다. 전투기·훈련기·정비체계를 통합한 이 수출도 패키지 형태로 이뤄졌으며, 2024년에는 콜롬비아와의 계약이 가시화되며 중남미 시장 개척도 본격화됐다.
한국 무기의 강점은 ‘가성비’와 ‘속도’다. 미국·유럽산 무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면서도, 실전에서 입증된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자주포 시장점유율 50%를 넘긴 K9 자주포의 가격은 경쟁 품목인 독일 PzH2000의 절반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선제적으로 이뤄진 대규모 설비 투자 및 공장 자동화로 빠른 납기 대응이 가능한 생산 체계도 수입국들로부터 높은 신뢰를 얻는 또 다른 이유다. 한국은 2022년 폴란드에 K2 전차 10대와 K9 자주포 24문을 계약 체결 4개월 만이라는 이례적으로 짧은 기간 내에 납품했다.
국제 정세도 우호적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방위비 지출은 2조7180억 달러(약 3682조 원)로 2015년 대비 37% 증가했다. 미국이 9970억 달러로 가장 많고, 중국(3140억 달러), 러시아(1490억 달러)가 뒤를 이었다. 나토(NATO) 32개국의 총 방위비는 1조5060억 달러에 달하며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다만 단기간 실적 확대에만 치중하다 보면 기술 내재화와 생산기반 확충이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산 수출과 관련된 정책과 지원 제도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방위사업청, 국방기술품질원 등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점도 기업 입장에선 부담이다. 여러 부처를 상대로 업무를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방산 수출 콘트롤타워 신설, 대통령 직속 ‘방산수출진흥전략회의’ 정례화 등을 내건 바 있다.
이정아 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다양한 제도와 조직을 통해 방산 수출을 지원하고 있으나, 기능이 여러 기관에 분산돼 정책 연계성과 통상 중심의 유연한 지원 체계가 부족하다”며 “기술이전, 현지생산, 금융지원 등 복합 협상 의제에 대한 대응력 확보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