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 칼럼] 1기 내각 명단에 비친 원전 정책

입력 2025-06-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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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가장 강력한 창과 방패 한데 두고
에너지믹스 순항 바라는건 난센스
‘원전·재생 조화’ 가능할지가 관건

이재명 대통령이 그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로 김정관 두산에너빌리티 사장을 발탁했다. 앞서 지난주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는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명했다. 원자력발전이란 잣대로만 재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창과 방패를 한데 모은 조각 명단이다. 새 에너지 정책에 촉각이 곤두선 산업계는 좀 헷갈리게 됐다. 문재인 시대를 답습하는 탈(脫)원전인지, 반면교사로 삼는 탈탈원전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아서다.

산업부 장관 후보자를 배출한 두산에너빌리티는 국내 간판급 원전 설비 제조기업이다. 글로벌 원전 산업 부활에 힘입어 근래 주가도 불붙은 상태다. 김 후보자도 원전 관련 수주에 큰 역할을 했다. 어제 출근길엔 “산업과 에너지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언급도 했다. 그러니 이번 발탁만 보면 탈탈원전에 베팅할 만하다. 이 대통령이 최근 “AI(인공지능) 시대의 고속도로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기대감을 더한다. AI 고속도로를 한국의 자랑거리인 K-원전을 배제하고 깔 까닭도, 깔 수 있을 리도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환경부 인사로 눈을 돌리면 베팅 자신감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김성환 후보자는 원전에 제동을 거는 입법 활동을 해 왔다. 지난주 출근길에 선을 긋기도 했다. “한국은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로 쓰는 탈탄소 정책을 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시장의 총량을 100이라고 하면 90을 재생에너지에, 10을 원전에 투자한다”고도 했다. 환경부 인맥이 주도권을 쥐면 향후 에너지 정책이 어찌 굴러갈지는 불문가지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사용하는 과학 어휘는 19세기 이후 주로 일본을 통해 전해졌다. 전남대 김성근 교수의 ‘과학 용어의 탄생’에 따르면 물리, 기술, 원자 등의 개념어가 다 그렇다. 전기는 드문 예외로, 화학과 함께 중국산 어휘다. 전기의 전(電)이란 한자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은 천둥·번개와 무관치 않다. 전근대 동아시아는 자연의 경이로 전기를 인식했다는 뜻이다. 과학 혁명을 거친 서구 사회가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해 산업화를 일궈낸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과거 서구 관점으로 보나, 21세기 현실로 보나 전기를 비롯한 에너지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된다. ‘패러데이 법칙’을 발견한 19세기 과학자 마이클 패러데이는 일찍이 ‘전기의 가치’를 묻는 영국 총리 윌리엄 글래드스턴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곧 세금을 부과하게 되리라는 겁니다, 각하.”

원자붕괴설을 수립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영국 과학자 프레더릭 소디가 “에너지의 흐름이 경제학의 일차적인 관심사가 돼야 한다”고 단언한 것이 근 100년 전(1926년)의 일이다. 이젠 어떤가. 경제학만이 아니다. 국가 운영의 일차적 관심사 또한 에너지의 흐름이 될 수밖에 없다. 세금은 물론, 민생·국부와 직결되는 새 에너지 정책의 골격을 짐작하기 어렵다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이런 상태가 길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구촌은 ‘원전 재평가’ 시즌을 맞고 있다. 눈만 크게 뜨면 단박에 알 수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이제 원자력 시대”라고 선언했다. 2050년까지 원전을 4배로 늘리겠다고 한다. 미국은 그러잖아도 세계 최대 원전 보유국이다. 기존 가동 원전이 94기다. 각각 50여 기씩 가동 중인 중국, 프랑스도 구경만 하진 않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모범국가들도 탈탈원전에 나서고 있다. 1985년 원자력금지법을 제정했던 덴마크가 좋은 예다. 2003년 탈원전을 택했던 벨기에도 급선회 중이다. 스페인도 지난 4월 대형 정전 사태를 겪으면서 친원전 기조로 바뀌고 있다. 핀란드 등도 유사하다.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이 이렇다.

이재명 정부의 1기 내각 명단을 놓고 원전과 재생에너지 병행 포석이란 해석도 나온다. 탈원전도, 탈탈원전도 아닌 ‘에너지 믹스’라는 것이다. 시장 혼란과 불확실성을 덜려면 명쾌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9 대 1’ 믹스 따위여선 안 되지 않나. 국정 최고 책임자가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은 최근 서유기의 ‘파초선’을 언급하며 “본인에게는 아주 작은 부채지만 세상은 엄청난 격변을 겪는데, 권력도 그런 것 같다”고 했다. K-원전 흥망을 가를 파초선 부채질이야말로 그럴 것이다. trala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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