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향 와인 시장 속 제2의 도약 준비

국내 주류 시장에서 와인의 입지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 활동에 제한이 생기자 모든 활동은 ‘집’으로 집중됐다. 음주도 예외는 아니다. ‘홈술’, ‘혼술’ 등의 단어가 유행하면서 주류 시장의 주류(主流)로 떠오른 것은 다름 아닌 와인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할 때 와인업계에 입문한 이권휴 와인나라 대표는 “와인이 단순히 마시는 술에서 경험과 스토리까지 소비하는 술이 됐다”며 웃어보 였다.
26일 서울 중구 충무로1가 와인나라 명동점에서 만난 이권휴 대표는 사업장 내부를 둘러보며 직원들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현장을 자주 찾는다는 이 대표는 진열된 와인을 둘러보며 “와인을 좋아하지만 아직 지식은 모자르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겸손한 말이지만, 어쩌면 솔직한 말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종합주류기업 아영그룹 창립 이래 처음으로 외부에서 수혈한 대표이사다. 국내 1세대 와인수입사인 아영그룹은 아영FBC가 주로 수입을 맡고, 와인나라가 유통·전문점·이커머스·레스토랑 등 사업을 전개한다. 와인업계는 폐쇄적인 편으로 이종 산업에서 수장을 영입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와인나라가 설립된 1987년 증권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 대표는 금융 전문가도 불린다. 증권회사와 자산운용사에서 기업금융과 자산운용을 담당하며 리스크 관리와 데이터 기반 투자 전략을 구축했다. 와인나라 합류 전에도 다양한 분야 업종을 경험했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컨설팅 회사, 반도체 기업 등에서 대표이사를 맡은 후 와인나라로 왔다.
전혀 다른 업종으로 자리를 옮기는 데 심적 부담이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도전이었지만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재미를 붙이곤 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별명은 ‘소방수’다. 지난 25년 동안 8개의 기업에 몸담으며 기업을 둘러싼 리스크를 관리해왔다. 부도 직전의 회사를 정상화한 이력도 있다. 빚만 1000억 원에 달했던 기업에 문제 해결사로 투입됐을 때, 은행에서 상환을 독촉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차분히 상황 파악부터 나섰다. 어떤 것이 가장 문제인지 직접 알아보기 위해 매일 현장으로 향했다. 사업장에서 먹고 자며 문제 해결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
동시에 과감하게 비용을 줄이는 작업도 진행했다. 분산돼 있던 업무공간을 통합하고 업무 효율화에 나섰다. 최우선 목표인 빚 상환에 총력을 다해 4년 만에 모두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곳간에 현금도 쌓았다. 목표를 달성한 이 대표는 기쁘기도 했지만,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고 한다.
그러다 오랜 친구이자 아영FBC 공동 창업자인 변기호 대표에게 러브콜을 받았다. 이 대표는 “어떤 기업이든 나를 대표이사로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해결하라고 불렀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 CEO를 맡기는 건 쉽지 않은 결정이다. 하지만 변 대표가 나에게 기대한 건 와인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인 사고였다”고 설명했다.
2020년 5월, 이 대표가 와인나라에 합류했을 때는 큰 변화가 없던 시장에 팬데믹이란 변수가 생겼다. 팬데믹은 결과적으로 와인 시장을 키웠지만, 당시에는 유례 없는 상황에 전략 수립에 진땀을 뺐다. 와인 시장이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 가시화되지 않을 때였다. 취임 당시에만 해도 ‘큰일났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곧 도약의 기미를 알아차렸다. 그는 반품률 등을 통해 유흥 시장보다 가정 시장에서의 수요를 감지했다. 그는 이 시기를 “위기가 기회가 됐던 때”라고 되돌아봤다.
2020년 이후 와인 시장은 급격히 팽창했다. 이 대표는 와인 바(Bar)와 레스토랑 등 유흥 시장뿐 아니라 백화점, 대형마트 등 가정 시장에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을 유통하는 동시에 직영 매장을 적극적으로 오픈했다. 기존 5개에서 현재 13개점까지 늘렸다. 성수, 용산, 홍대입구 등 젊은 세대 타깃의 새로운 거점을 마련했다. 빠르게 늘어나는 와인 애호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와인 전문점으로 자리 잡았다.

와인 시장이 커지면서 그 속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찾아왔다. 그동안 시장을 주도했던 소비자는 40대 이상 남성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와인이 대중화되면서 트렌드에 민감한 20·30대 여성이 주도하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와인나라는 와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와중 소비자가 찾는 와인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유통하면서 와인 대중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대표 취임 이후 와인나라는 ‘다양성’에 방점을 찍었다. 금융 전문가 출신의 대표라는 타이틀 자체도 다양성의 상징이지만, 매장 구성이 많이 바뀌었다. 자사 수입 와인 위주였던 와인나라에 타사 수입 와인을 크게 늘렸다. 화이트와인, 샴페인, 위스키 등 카테고리도 확장했다.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있는 와인을 병이 아닌 글라스로 시음해보면서 자신에게 맞는 와인 취향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대표는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로 고객 경험과 만족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숫자에 익숙한 이 대표는 금융업에서의 경험이 와인나라 경영에 큰 자산이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시장의 변화를 데이터로 분석하고, 각각의 시나리오에 대한 리스크를 검토해서 대응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와인나라에서도 이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지역별, 매장별 판매 흐름과 시음회 등의 행사에 대한 고객의 반응을 데이터로 분석했다. 이에 맞게 와인 상품 구성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상품의 도입을 검토하는 등 조치했다.
시장에 안정화에 들어서자 이 대표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주류 온라인 판매 허용에 대한 대응이다. 그는 “아직까지는 허용되지 않고 있으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와인 서비스의 제공은 언젠가 시장을 크게 변화시킬 요인”이라고 설명하며 “가장 위협스러운 업체는 쿠팡이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대응 차원에서 와인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문화적 경험으로 재정의하며 체험형 콘텐츠 혁신에 나섰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드링크 온 무드’를 꼽을 수 있다. 한강 뷰를 배경으로 와인과 음식 페어링, 라이브 음악, 소믈리에 토크를 결합한 이 복합 문화 행사는 매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홈닉’ 프로그램은 아파트 단지와 협업해 옥상 가든 파티 형식의 시음회를 열어 도심 속에서 와인을 즐기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인터뷰를 진행한 명동점도 이 대표가 추진한 혁신이다. 와인나라 매장을 레스토랑 ‘모와(MOWa)’ 공간에 숍인숍(shop in shop)으로 구성해 와인 구매 후 즉석에서 음식과 페어링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 대표는 “고객이 와인을 단순히 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와인의 스토리와 맛을 경험하도록 유도했다”며 “이런 체험은 소비자와 와인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한다”고 했다.
앞으로 와인나라는 ‘스토리와 체험’을 핵심 축으로 삼아, 단순 유통이 아닌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향한다. 이 대표는 “크게 보면 와인 시장은 분명한 우상향 마켓이다”라며 “앞으로 재편될 시장 속 스토리와 체험이라는 우리의 전문성을 살려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권휴 와인나라 대표 프로필>
▲1960년 출생
▲인하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미국 오하이오 대학교 졸업(MBA)
▲2001년 1월 모아증권 대표이사
▲2004년 3월 쌍용화재보험 경영개선 추진위원장
▲2004년 11월 신성개발 대표이사
▲2006년 1월 Thomas Consultants Korea 대표이사
▲2008년 9월 피닉스 AMC 대표이사
▲2012년 1월 그랑시떼 대표이사
▲2014년 1월 미래산업 대표이사
▲2020년 5월 와인나라 대표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