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새 정부의 ‘실용적 시장주의’를 기대하며

입력 2025-06-17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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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설 한국좋은일자리연구소장ㆍ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

친노동·규제개혁 동시 추진은 모순
국익 위해 FTA 추진한 노무현처럼
노란봉투법·주4.5일제 등 재고해야

분배와 복지를 부르짖던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과정을 거치면서 성장과 실용주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념이 밥 먹여주나, 성장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다”거나 ‘먹사니즘’, ‘잘사니즘’, ‘중도보수’, ‘성장’ 등을 슬로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박정희, 김대중 정책을 구별 없이 쓰겠다”며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를 천명했고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기업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규제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변경하겠다”고 약속했다. 취임 후 5대그룹 총수 및 경제단체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는 “행정 편의를 위한 불필요한 규제들을 과감하게 정리하겠다”며 규제개혁 의지를 거듭 다졌다. 이런 발언들을 보면 기존 반시장, 반기업 정서가 강했던 이 대통령이 성장과 기업 경쟁력을 중시하는 시장주의자로 전환한 것 아니냐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진짜 실용적 시장주의’ 노선을 걸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규제 개혁의 핵심은 노동개혁이다. 그런데 대선공약에는 노동시장 유연화, 주 52시간제 개편 등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만한 노동개혁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 어떤 행정적 규제보다 기업의 경제활동을 옥죌수 있는 노란봉투법, 주 4.5일제 등 친노동정책들을 대선 공약에 포함시켜 줄줄이 입법을 기다리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사용자의 교섭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에 대한 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 자취를 감춘 제도로 노동조합의 악성파업과 노사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반시장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노동계는 ‘대선 청구서’를 내밀며 새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주 4.5일제는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대표적 포퓰리즘 제도로 꼽힌다. 독일 프랑스 등 근로시간이 짧은 나라들은 단시간근로가 국가경쟁력의 하락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해 오히려 근로시간 연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재명 정부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연평균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시간에 근접할 정도로 짧아져 과로 위험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경제의 역동성을 끌어올려야 할 정부가 규제개혁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칠 반시장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정책을 펼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국가경제의 성장과 경쟁력을 위해선 친노동 포퓰리즘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시장 친화적 정책을 펼쳐야 한다. 그게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대통령의 의무이자 책무다. 노무현 정부의 실용주의 노선은 이재명 정부가 교과서로 삼을 만할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자마자 경제계에 기울어진 사회적 힘의 균형을 법과 원칙을 바꿔서라도 바로잡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오래가지 않아 깨졌다. 노조 위상을 높이겠다고 약속한 이후 노조의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무분별한 파업과 집단행동으로 인해 기업 손실이 늘고 국정운영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불법파업에 대해 법과 원칙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기업 노조, 그들만의 노동운동”, “나라경제 발목을 잡는 노동운동은 자제되어야” 등의 비판을 쏟아내며 노동계와 정면으로 맞섰다.

노무현 정부는 노동계와 시민단체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해 성사시켰다.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서다. 정상적 국정운영을 위해선 대기업 노조를 중심으로 한 무책임한 독점집단의 이기적 압박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그는 서민을 위하는 정권을 표방하고 분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좌파로 분류되지만 한미 FTA 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동시에 추진했다는 점에서 친시장주의자임에 틀림없다. 노 전 대통령도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불렀을 정도다.

이 대통령은 국정운영 책임자로서 누구보다 실용적 시장주의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을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 즉 중도 실용주의를 통해 고루 잘사는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발언대로 국정운영을 해나간다면 이념적으로 노 전 대통령처럼 ‘좌파 신자유주의자’로 분류될 것 같다. 노동자의 기본권과 삶의 질 향상이라는 어설픈 명분을 내세운 친노동정책은 기업 투자를 주저하게 하고 경제 성장동력을 떨어뜨릴 뿐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규제개혁을 하겠다는 약속과도 맞지 않는다.

“낡은 이념은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 이제부터 진보의 문제란 없다. 이제부터 보수의 문제도 없다. 오직 국민의 문제, 대한민국의 문제만 있을 뿐”이라고 한 취임사가 실제 국정 철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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