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올해 세수 여건이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78조 원에 달하는 조세지출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선 증세보다 재정지출 중복을 줄여 나라 살림 씀씀이를 효율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조세지출은 면제하거나(비과세) 깎아주는 방식(감면)으로 세 부담을 덜어주는 정책이다. 간접적인 재정지출 성격이어서 ‘숨은 보조금(hidden subsidies)’으로도 불린다. 각종 소득공제, 세액공제, 우대세율이 조세지출에 해당한다.
1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조세지출 규모는 78조 원으로 2016년 37조4000억 원에서 약 10년 새 갑절 이상으로 불어났다. 이에 국세감면율은 15.9%로, 법정한도(15.6%)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세감면율이 상승하는 것은 국세 수입이 늘어나는 속도에 비해 과도하게 세금을 깎아주기 때문이다. 경기둔화 여파와 기업실적 악화 등으로 국세 수입은 예산보다 적게 걷혔지만, 국세 감면액은 보험료 특별소득공제와 연금보험료 공제 같은 구조적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재정 건전성을 저해하고 세수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조세지출은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임에도 ‘지출’이란 용어가 사용되는 것은 재정지출과 동일하게 씀씀이를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는 의미다. 저출산·고령화로 저성장이 고착화함에 따라 세수 증가율이 계속 낮아지는 상황에서 세금 감면을 지속하다 보면 세수 기반이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해마다 각종 명목의 신설 감면이 늘어나고 있지만, 일몰이 도래한 감면은 정확한 실무적 평가 없이 관성적으로 연장되고 있는 것이 다반사다. 정치권의 포퓰리즘과 수혜층의 반발을 의식해 구조조정을 엄두도 못 낸 결과다.
한번 만들어진 조세지출 항목은 기득권이 돼서 항구화하려는 속성을 갖기 마련이다. 시한이 정해져 별도의 연장 조치가 없으면 자동 폐지되는 일몰제도도 있지만, 예정대로 없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정치권과 이익단체의 의기투합에 관행적인 행정편의까지 얽히고설켜 시한을 넘겨 연장되기 때문이다. 징수해야 할 세금을 안 걷는 ‘사실상 돈을 뿌리는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지만 법 개정 사안으로, 국회의 의지가 중요한 변수다.
올 들어 4월까지 나라살림이 46조 원 적자를 기록했다. 역대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추가경정예산이 반영되면 적자 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국가재정 차원에서 더는 무분별한 조세지출을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오죽했으면 국회 예산정책처까지 나서 조세특례 제도를 과감하게 줄이라는 조언을 내놨겠는가. 근로소득자 반발과 이해관계자들 눈치 보기 영향 등으로 국회에서 일몰 연장을 이어가는 행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세지출을 손봐야 한다는 공감대는 충분히 형성됐다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 정권 초반의 탄탄한 국정 장악력, 여당이 절대우위인 의회 지형을 지렛대로 삼으면 이번이 구조조정의 적기로 꼽힌다. 조세지출 사전·사후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제도 전반에 대한 재정비에 나서야 한다. 정치·이념적 유불리를 떠나 실사구시적 접근으로 과감한 실천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