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내리고 비싼 금 대신 주목 받아

최근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은(銀)이 주목받고 있다. 미 달러 가치가 떨어지고 금과의 가격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은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대체 안전자산’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의 ‘메리츠 레버리지 은 선물 ETN(H)’의 13일 기준 종가는 2만5535원으로 이달 들어서만 20.16% 올랐다.
‘N2 레버리지 은 선물 ETN(H)’도 같은 기간 20.14% 올랐다. 그 외 △‘신한 레버리지 은 선물 ETN(H)’(19.99%) △‘삼성 레버리지 은선물 ETN(H)’(19.72%) △‘KB 레버리지 은 선물 ETN(H)’(19.48%) 등도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주가상장증권(ETN) 다수는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 상장된 은 선물의 일간 수익률을 두 배로 추종한다
은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한 수익률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은에만 투자하는 ‘KODEX 은선물(H)’ ETF는 올해 들어 9.45% 올랐다. 기관투자자는 같은 기간 51억 원어치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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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자산 선호 변화와 산업 수요 확대로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은이 13년 만에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국내 은 관련 투자상품 가격도 뛰고 있는 모습이다.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9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은 선물 가격은 장중 트로이온스당 37달러를 돌파하며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2일에도 36.46달러에 거래되는 등 한 달 새 10% 가까이 오르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같은 은값 급등의 배경에는 안전자산 선호 변화와 산업 수요 확대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의 정책 불확실성과 막대한 정부 부채 우려로 달러화의 안전자산 지위가 흔들리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소식으로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까지 불거지며또 다른 안전자산인 은이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 최근 달러 가치는 무너지는 추세다. 실제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 달러의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13일 기준 98.18로 올 초(109.39) 대비 10% 넘게 떨어졌다. 12일에는 장중 한때 97.61까지 떨어지며 202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달러인덱스는 100 이하면 달러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이 와중에 금보단 아직 싼 은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금 1온스를 사는 데 필요한 은의 양을 나타내는 ‘금은비’는 최근 92.8배까지 낮아져, 은이 금 대비 저평가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치솟던 금값도 최근 들어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다. 13일 기준 국제 금값은 온스당 3424.05달러로 이달 들어 2.6%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은값이 10% 가까이 오른 것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경쟁자 비트코인이 강해지면서 헷지(위험회피) 수요가 분산되고 최근 가파르게 오른 가격에 대해 투자부담이 커진 것으로 분석된다.
수요 대비 공급이 제한적인 환경도 은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 은 공급의 60%는 아연과 구리의 부산물로 얻어지는데 아연은 낮은 가격 탓에 감산이 진행되고 있고 구리도 구조적으로 공급이 부족해 부산물 생산에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여기에 산업재로서 은의 활용도가 높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은은 태양광 패널, 전기차, 인공지능(AI) 반도체, 5G 네트워크 등 신산업에서 필수 소재로 쓰인다.
최진영 대신증권 연구원은 “은과 백금은 산업용 수요만 58~68%에 달해 추후 유동성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며 “각국 중앙은행들은 관세 리스크와 경기 침체를 우려해 선제적으로 정책금리를 인하한 바 있는데 중앙은행들의 정책금리 인하 순-회수가 글로벌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를 18개월 선행하는 점을 고려하면 산업용 수요의 본격적인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