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맞춤금융 지원 땐 유동성 과도
'양날의 칼' 포용금융 "선별적 지원을"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최대의 금융 현안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가계부채’다. 연초까지만 해도 둔화세를 보였던 가계빚은 최근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급팽창하며 금융시장과 내수에 이중부담을 주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출 총량제와 규제 강화를 통해 ‘안정적 관리’를 언급하며 신중한 접근을 예고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금리 인하 기대감과 집값 상승이 맞물리며 ‘영끌·빚투’ 현상이 다시 고개를 드는 데다, 자영업자·서민 대상의 맞춤형 금융지원까지 확대될 경우 시장에 유동성이 과도하게 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계부채 연착륙 여부는 향후 이재명 정부의 경제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48조812억 원으로 전월(743조848억 원)보다 4조9964억 원 늘었다. 올해 최대 증가 폭이다.
이 중 주담대가 589조4300억 원에서 593조6616억 원으로 4조2316억 원 증가했다. 올해 들어 주담대 증가 폭이 4조 원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앞서 월별 주담대 증가 폭은 △1월 1조5137억 원 △2월 3조3835억 원 △3월 2조3198억 원 △4월 3조7495억 원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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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점차 회복 국면에 접어들면서 실수요자뿐만 아니라 투자 수요까지 다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리 인하 기대감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부터 ‘가계부채 총량의 안정적 관리’를 정책 기조로 내세웠지만 구체적인 실행 전략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새 정부는 부동산 시장 안정과 금융시스템의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관계기관 간 회의체를 정례화하고 협업 체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현재로써는 금융당국이 은행별 총량 규제를 통해 대출 공급 자체를 통제하는 기존의 가계부채 관리 방식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금융당국은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를 예정대로 다음 달부터 시행한다. 금융당국은 3단계 DSR 시행 이후에도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라앉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거시건전성 규제 수단을 검토할 계획이다.
새 정부의 대출금리 인하 정책 기조도 가계부채를 자극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금융회사가 대출 시 발생하는 법적 비용을 금융소비자에게 과도하게 전가하는 관행을 바로잡겠다고 밝혀왔다. 해당 내용을 담은 가산금리 관련 법 개정안은 지난 4월 국회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돼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있다.
가산금리 구조 개선은 양날의 칼이다. 가산금리 인하가 현실화될 경우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져 서민의 이자 부담을 줄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반대로 대출 수요를 키우는 등 가계부채 증가를 부채질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이 공약한 포용적 금융 지원 확대도 묘수가 필요하다. 대출은 억제하면서도, 취약계층에게는 유연하게 유동성을 공급해야 하는 이중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코로나19와 12ㆍ3 비상계엄 여파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에 대해 대출 탕감·조정에 나설 것을 약속했다. 이를 위해 배드뱅크 설립을 공약했고, 금융당국은 검토 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금융감독원은 CPC(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자료 요청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를 통해 장기 소액 연체채권 규모를 파악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일련의 금융정책은 단기 유동성 조정을 넘어 중장기적 민생 안정과 경제 회복의 기초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이재명 정부의 금융 정책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정책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수요자와 취약 차주에게 필요한 자금은 충분히 공급하되 투기성 수요는 사전에 차단하고 가계부채 관리가 전제된 정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가계부채 문제는 단순한 금융 리스크를 넘어 소비 회복·고용 창출·내수 안정과 직결된 구조적 과제"라며 "이재명 정부가 이를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향후 5년간 한국 경제의 체질과 방향성이 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