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규칙’ 새롭게 쓴 우크라이나…“현대전, 가장 중요한 공습 사례”

입력 2025-06-0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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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서 4000km 떨어진 러 본토 군기지 4곳 타격
순항미사일 공격 활용 전략폭격기 등 41대 항공기 파괴
18개월 걸친 준비 끝에 성공…드론 150기·폭탄 300개 동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바실 말리우크 국장으로부터 이날 러시아 공군기지들을 상대로 실시한 대규모 드론 공격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다. 키이우/EPA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왼쪽)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키이우에서 바실 말리우크 국장으로부터 이날 러시아 공군기지들을 상대로 실시한 대규모 드론 공격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있다. 키이우/EPA연합뉴스
러시아 소셜미디어가 1일(현지시간) 정오 직후 들썩이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가 지금까지 러시아 본토에서 감행한 작전 중 가장 대담한 공격이 알려진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약 4000km 떨어진 동시베리아 이르쿠츠크주에 있는 벨라야 기지를 포함해 러시아 본토 공군기지 4곳이 드론 공격을 당해 조기경보기인 A-50과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인 Tu-95와 Tu-22M3 등 최소 41기의 항공기가 파괴되거나 손상됐다.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공습 사례로 꼽힐 이번 타격을 통해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규칙’을 새롭게 썼다고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분석했다.

이르쿠츠크 주민은 트럭에서 소형 쿼드콥터 드론이 나와서 인근 공군기지로 향하는 장면을 촬영해 온라인에 올렸다. 한 주민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타이어 가게에서 일하는 중 트럭이 도착했는데 거기서 드론이 날아갔다”고 밝혔다. 러시아 최북단 무르만스크 근처 공군기지에서도 “운전자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드론이 트럭에서 나와 기지로 향했다”며 유사한 증언이 이어졌다.

우크라이나 주요 정보기관인 보안국(SBU)은 ‘거미줄(Spider Web)’이라는 작전명을 붙인 이번 작전 배후를 자처했다. SBU는 거친 목소리로 유명한 바실 말리우크 국장의 발언이 담긴 영상도 공개했는데, 그는 “러시아 전략폭격기들이 아주 멋지게 불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가한 가장 큰 타격 중 하나로, 전쟁 4년 차에 접어든 현시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했다. 러시아는 전략폭격기를 소수만 보유하고 있으며, Tu-22, Tu-95, Tu-160 등 작동 가능한 기체는 총 90대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체는 핵무기 운반 능력도 있지만 최근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순항미사일 공격에 사용됐다. 이에 우크라이나 입장에서 중요한 표적이다. 특히 Tu-22M3와 Tu-95는 30년 이상 생산이 중단된 기종이며 대체 기종인 Tu-160도 생산 속도가 매우 더디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에서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드론이 트럭에서 나와 공군기지로 날아가고 있다. 이르쿠츠크(러시아)/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이르쿠츠크주에서 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드론이 트럭에서 나와 공군기지로 날아가고 있다. 이르쿠츠크(러시아)/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에 있는 전략 자산을 타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타격 역량이 발전한 것은 물론 러시아 내에서 첩보망이 상당한 수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의 작전은 범위·목적·정교함 등 모든 면에서 급속히 발전했다.

서방은 일부 장거리 타격 기술을 지원하고 있으며 독일은 지난달 28일 장거리 드론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대부분 기술과 작전 기획은 우크라이나 자체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 작전은 준비에만 18개월이 걸렸다. 러시아는 야간 및 국경 인접 지역에서 대형 고정익 드론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지만 우크라이나는 작전의 모든 요소를 반대로 뒤집었다. 주간에 소형 쿼드콥터로 심지어 러시아 내륙에서 발진한 것이다. 이전에도 러시아 내부에서 드론을 발사한 적이 있지만, 이번에는 규모가 전례 없이 크고 작전도 매우 정교했다.

우크라이나 안보당국과 가까운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작전을 위해 러시아로 밀반입된 드론은 150기, 폭탄은 300개에 달했다. 드론은 나무상자 안에 숨겨져 트럭에 실려 이동됐다. 컨테이너에 이들 상자가 몰래 숨겨졌는데 지붕이 원격으로 열리면서 드론이 발사됐다.

드론은 러시아의 이동통신망을 이용해 실시간 영상을 우크라이나로 전송했고, 이 영상 대부분을 기쁨에 찬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공개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또한 자동 표적 식별 시스템도 일부 사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우크라이나 정보당국 관계자는 트럭 운전자들조차 자신들이 무엇을 운반하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이 작전을 2022년 크림대교 공격에 비유했는데, 당시에도 트럭에 숨겨진 폭탄이 대교 일부를 파괴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작전은 매우 복잡하며, 핵심 인물들도 정보를 제한적으로 공유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재배치를 유도하기 위해 사전에 다른 기지를 공격했다”며 “작전 3일 전 수십 대의 기체가 무르만스크주 올레냐 공군기지로 이동했으며, 그곳이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이 작전은 2일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예정된 평화 회담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러시아는 최근 수백 기의 드론을 동원한 대규모 공격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공포에 몰아넣었는데, 지난달 31일 오후 벌어진 공격에는 최대 472기 드론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쟁 지속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보여줄 방법을 찾고 있었으며, 이번 작전이 효과를 낼지 아니면 갈등만 고조시킬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러시아 내 애국주의 성향의 소셜미디어들은 이번 사태를 1941년 진주만 공습에 비유하며 강력한 보복을 요구하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관계자도 “이 작전이 서방의 지원을 멀어지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면서 “1853년 러시아가 오스만 제국의 시노프 항을 공격했다가 국제적 고립을 자초했다”고 밝혔다.

서방 군사당국도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비용 절감을 위해 항공기를 소수 기지에 집중적으로 배치했지만 드론과 미사일 공격에 대비한 강화 격납고 등의 시설 투자를 등한시했다. 현재도 미국 전략폭격기는 위성사진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다. 미국 싱크탱크 CNAS의 톰 슈가르트는 “전시에 철도 야적장이나 중국 소유의 컨테이너선, 무작위 트럭에서 수천 대의 드론이 쏟아져 나와 미 공군의 핵심 자산을 마비시키는 것을 상상해보라”며 “이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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