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적인 '팬덤'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응원하던 방식도, 스타가 팬을 대하는 자세도 사뭇 달라졌죠.
이제 팬은 일방적인 관객이 아니라 '동료'와도 같습니다. 일종의 브랜드처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운영하고, 때로는 스타와 함께 콘텐츠를 기획하면서 무대 밖의 이야기를 전하는데요. 이처럼 함께 일하는 팬, 팬과 직접 소통하는 스타의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이들이 함께 만드는 이야기는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새로운 문화로까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고, 즐기는 팬덤이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얼굴이 되는 셈이죠.

'스타와 팬덤이 함께 만드는 콘텐츠' 하면 배우 차주영과 팬클럽 꾸꾸월드가 대표적입니다.
이른바 '꾸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차주영의 팬들은 차주영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웃수저(웃음 수저)'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한 꾸꾸가 운영하는 SNS 계정 속 영상 한두 개만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겁니다.
한 꾸꾸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차주영 붐은 온다‥'라는 이름의 계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특별한 점은 팬이 아니라면 볼 수 없는 차주영의 인간적인 면모를 담아냈다는 겁니다. 꾸꾸들은 드라마 촬영장, 영화 무대 인사, 브랜드 행사, 스케줄 출퇴근길 등을 찾아 차주영을 만나는데요. 이 자리에서 나온 반응이나 대화 등을 짧은 쇼츠 영상으로 편집해 공개하죠. 해당 채널에 게재된 영상들은 수십만~수백만 회의 조회 수를 돌파하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특히 화제가 된 영상은 팬들을 백수로 오해하는 차주영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습니다. 자신을 따라 같은 기종의 스마트폰을 샀다는 꾸꾸에게 차주영은 "일도 안 하는데 돈이 좀 있나 봐"라고 떠보듯 묻습니다. 이에 꾸꾸들은 격분해(?)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데요. 이후 '근로소득으로 보낸 커피 차'라는 귀여운 문구와 함께 차주영의 촬영장에 커피 차 이벤트를 진행해 웃음을 더했습니다.
또 팬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마흔다섯 살이다. 응원해줄 수 있겠냐"고 묻는 영상도 웃음을 안겼는데요. 차주영은 "나는 나이 상관 안 하는 스타일이라"면서도 "그런데 웬만하면… 응원해줄 수는 있지, 근데"라고 말끝을 흐렸죠. 쉽사리 말을 잇지 못하는 차주영에게 팬은 "사실 10년 후의 언니"라고 고백했고, 팬에게 속아 넘어간 차주영은 웃음을 터뜨렸죠. 이 영상에 네티즌들은 "말은 괜찮다고 하는데 생각하는 눈빛이 착잡하다", "마흔다섯 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동공이 탁해지는 게 웃음 포인트", "눈빛이 어떻게 말리지, 어떻게 좋게 말하지, 어떻게 말해야지 상처를 안 받지 고민하는 눈빛이다. 정말 매력적인 배우" 등 댓글을 달며 호응했죠.
이 밖에도 꾸꾸들은 무대 인사를 찾아 현수막, 플래카드 이벤트를 벌이면서 감동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고 있는데요. 이를 직관한 차주영이 웃음을 참는 모습까지 담겨야 콘텐츠의 완성입니다.
차주영 역시 꾸꾸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데요. 팬들의 생일 카페에 몰래 와서 음료를 결제하고 간다거나, 자신을 보러 온 팬들을 택시에 태워 보낸다거나, 팬들의 바람대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말이죠.
이 같은 관계성은 차주영 팬뿐만 아닌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27일 기준 '차주영 붐은 온다‥' 유튜브 채널은 23만7000여 명, 인스타그램 계정은 13만4000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데요. 팬들의 '웃수저' 활약은 물론 배우의 팬 사랑까지 더해지면서 이룬 성과라 더욱 뜻깊습니다.

스타와 팬의 유쾌한 협업은 이뿐만 아닙니다. 구독자 85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의 인기 코너 '월간 데이트'에서도 협업을 찾아볼 수 있었죠.
'월간 데이트'는 연애 리얼리티(?)를 표방합니다. 매달 '썸'의 가능성이 있는 남자와 하루 데이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요. 유튜버 준빵조교를 시작으로 래퍼 PH-1, 첼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박찬영, '환승연애3' 출연자 김광태 등이 얼굴을 비치면서 유튜브 인기 웹 콘텐츠로 자리 잡았죠.
이 중에서도 이달의 데이트 상대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데이트 상대는 배우 장동윤이었는데요. 평소 찰스는 장동윤의 팬임을 수차례 밝혀온 바 있습니다. 지난해 팬미팅까지 다녀온 '찐(진짜) 팬'인데요. 이달 '월간 데이트' 상대로 출연한 장동윤을 위해 커플 앞치마와 잠옷을 준비하면서도 돌연 괴성을 내지르며 긴장을 푸는 모습으로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또 장동윤의 차기작을 물으며 "제발 로맨틱 코미디를 해달라. 이 젊음과 미모가 아깝다"고 팬심 가득한 고백을 건네 많은 공감을 받았는데요.
함께 떡볶이와 김밥을 만들어 먹고 커플 파자마로 갈아입은 두 사람은 디저트를 먹으며 고백 상황극에 몰입해 웃음을 더합니다. 찰스가 고백 연기를 부탁하자, 장동윤은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해보면 어떨까. 평생을 함께해야 한다"며 몰입하는데요. 찰스와의 자연스러운 호흡 속에서 장난기 넘치는 모습과 함께 팬심에 화답하는 자세를 엿볼 수 있었죠. 이후 찰스는 "영상을 안 찍었을 때 제게 고민 얘기하다가 살짝 우셨다"며 장동윤의 섬세한 면모도 언급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장동윤은 찰스 몰래 찍은 후반부 영상에서 "귀한 사람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절 좋아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고 전해 감동을 자아냈는데요. 찰스 역시 이 만남에 대해 "정말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요"라며 "이날 일기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어서 너무 좋다'고 썼다. 나중에 연습생(구독자 애칭)님들도 혹시 저를 만나시면, 이런 생각이 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고 진심을 전했죠.
영상은 공개로부터 2주도 안 돼 29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는데요. 구독자들은 "장동윤 소속사 레전드 감다살(감이 다 살았다)", "솔직히 이 영상을 장동윤 필모그래피에 추가해야 한다. 역대급", "장동윤 입덕 영상이 될 것 같다" 등 열띤 반응을 보였습니다.

배우 손석구도 자신의 팬으로 잘 알려진 유튜버 짐미조의 개인 채널에 등장해 화제가 됐습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짐미조는 당시 스파이더맨 복장으로 '감히 날 제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영화 '범죄도시2' 무대 인사를 찾았는데요. 관객과 인사하던 마동석이 그를 발견해 무대 위로 불러냈고, 급하게 달려 나온 짐미조는 손석구와 셀카를 찍었습니다. 손석구의 휴대전화로요. 손석구는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려주겠다고 외쳤고, 이후 정말 이 사진을 게재하며 약속을 지켰죠.
짐미조는 이날 모습을 담은 영상을 시작으로 유튜브 채널을 본격적으로 운영했는데요. 손석구 역시 그의 채널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댓글부대' 무대 인사 때도 극장을 찾은 짐미조를 손석구가 먼저 알아보며 "유튜브 하죠?", "지금 무슨 일 하냐", "인스타그램 아이디 알려달라"며 호구 조사(?)에 나선 점이 이를 방증합니다.
사실 손석구의 호구 조사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26일 유튜브 채널 '짐미조'에 게재된 '석구 오빠랑 데이트했어요'라는 제목의 영상에서는 손석구가 출연해 놀라움을 자아냈는데요. 이 영상에는 두 사람이 식사부터 네컷 사진, 도자기 공방 등 핑크빛 데이트를 즐기는 모습이 담겨 주목받았죠.
손석구는 과거 자신의 호구 조사에 대해 "당시 내가 회사를 설립하던 시기였다. 누구랑 같이 만들어나가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홍보팀은 사고를 조금 달리하는 사람들, 상상 밖에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잘하는 것 같다"며 "만약 회사에 홍보팀이 생긴다면 나는 '저 친구를 한 번 영입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10만 유튜버가 됐더라"고 전했습니다.
손석구의 팬 사랑도 빛났는데요. 미국 뉴욕에서 사 왔다는 티셔츠와 과자를 짐미조에게 선물하거나 "영상보다 오늘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는가 하면, "유재석, 나영석 PD (방송에) 안 나가고 '짐미조' (채널에) 나가겠다고 했다"고 밝혀 짐미조의 함박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데이트 말미에서는 "서울 오면 연락해"라며 화룡정점을 찍었죠.
이처럼 팬은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콘텐츠의 공동 창작자이자 스타의 세계관을 확장하는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함께 만든 이야기는 웃음과 감동은 물론 새로운 팬덤 문화의 가능성까지 제시하죠.
다만 '팬과 함께하는 콘텐츠'가 대중성보다는 '특정 팬에게만 허용된 서사'처럼 보이면 친목 과시나 소수의 특혜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합니다. 팬과 스타가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낸 콘텐츠가 진정성, 유쾌함, 확장성을 고루 갖춘 경우라면 '사적인 이벤트'가 아닌 신선한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되는데요. 함께 일하고 즐기는 팬덤의 시대. 제2, 제3의 차주영-꾸꾸가 등장할 날도 머지 않은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