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산 ETF 글로벌 스탠더드 도약⋯한국은 규제에 '주춤'
"韓, 디지털 자산 시장의 갈라파고스⋯전향적 태도 필요"

국내 전문가들이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의 국내 도입 필요성과 현실적 과제를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디지털 자산 ETF의 확산이 가속하는 가운데, 한 발 뒤처진 한국의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는 판단이 나온다.
한국핀테크산업협회(핀산협)는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K-비트코인 현물 ETF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국내외 학계·법조계·산업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한국형 비트코인 ETF 방향과 과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돼 거래되며 가상자산이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자리 잡은 만큼, 우리나라도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콘퍼런스는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의 축사로 시작됐다. 서 회장은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 자산은 이제 디지털 지급 결제 수단을 넘어서 글로벌 핵심 투자 자산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해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상자산 선물 ETF의 발행은 물론 투자까지 금지된 상황"이라며 "가상자산 현물 ETF 도입에 대해 더욱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며, 금융투자업계는 가상자산 현물 ETF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 국회 정부 당국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관련 뉴스
정유신 핀산협 디지털경제금융연구원장은 '디지털 자산 트렌드와 해외 금융기관 동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정 원장은 "디지털 자산 시장이 금융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신산업이고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으므로 초기에 우여곡절이 있어도 육성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디지털자산 시장과 증권 시장은 상호 투자를 통해 연결ㆍ융합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며 "시중 자금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ETF 등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으며, 반대로 가상자산 자금은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증권 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재호 케이앤엘게이츠 변호사는 '홍콩의 디지털 자산 ETF 제도 및 법규 체계'를 중심으로 홍콩의 제도적 접근과 규제 사례를 심층 분석하고 한국이 고려해야 할 시사점을 제시했다.
이 변호사는 "홍콩은 지난해 4월 말, 비트코인 ETF와 이더리움 ETF를 각각 세 개씩 상장했는데, 이중 이더리움 ETF는 미국에도 관련 상품이 없었을 때 상장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라며 "홍콩은 현물 설정/환매 방식(인-카인드)을 받아들이고, 이더리움 ETF에 스테이킹(가상자산 예치)을 허용하는 등 새로운 시도에 긍정적으로 열려있으며, 규모가 작다는 단점이 있지만, 가상자산 글로벌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 많은 시도를 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도 제도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신기술에 따른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보호장치 마련을 촉구했다.
신용우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국내 비트코인 ETF 상품 출시를 위한 법적 쟁점'에 대해 논하며 현행 자본시장법 체계 내에서 비트코인 ETF가 마주하는 해석상 논점과 제도 개선 필요 사항을 정리했다.
신 변호사는 "비트코인이 기초자산에 해당하는지가 ETF 도입 전 가장 큰 쟁점"이라며 "비트코인 지수 산출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등 여러 기관에서 산출하고 있으며, 해킹이나 가격 조작에 의한 가격 변동 가능성이 작아 합리적이고 적정한 가격의 평가 및 그에 따른 지수 산정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비트코인 보관ㆍ관리업무의 수탁 및 재위탁에 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국내 비트코인 ETF 상품 출시 전 △기초자산 및 지수 요건 명확화 △수탁 인프라 및 신탁 제도 개선 △투자자 보호 및 시장 활성화 방안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오종욱 웨이브릿지 대표는 K-비트코인 현물 ETF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한 주요 조건을 제시하면서 국내 ETF 시장의 구조적 특성과 가상자산 수용 환경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성공적 도입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으로 전통 금융 수준의 커스터디, 유동성, 프라임 브로커리지(Prime Brokerage) 인프라를 꼽았다. 더불어 가상자산 영역에 대한 규제 프레임워크 정립, 시장 기능 고도화 및 운영 체계 선진화와 병행돼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는 'K-비트코인 현물 ETF와 가상자산 사업자의 역할'을 중심으로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제언했다. 정 대표는 "비트코인 ETF는 선택이 아닌, 글로벌 자본시장 경쟁에서의 생존조건"이라며 "다만, 국내에서 단번에 비트코인 ETF를 도입하는 건 제도상 어려움이 있으므로, 선물 ETF를 먼저 출시하고 현물 ETF를 출시하는 등 단계적으로 출시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주제 발표 후에는 'K-비트코인 현물 ETF, 왜 지금이 골든타임인가?'를 주제로 한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정유신 원장이 좌장을 맡고, 이재호 변호사, 신용우 변호사, 이용재 미래에셋증권 수석매니저, 오종욱 웨이브릿지 대표, 정구태 인피니트블록 대표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들은 비트코인 ETF 도입의 시급성, 제도화 로드맵, 산업 성장 가능성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했으며, 질문 답변도 진행했다.
이날 이근주 핀산협 회장은 “비트코인 현물 ETF는 단순한 투자 상품을 넘어, 디지털 금융 혁신의 상징이자 제도적 신뢰의 핵심 기반”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금융의 변화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