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망 분리 규제 특례에 혁신서비스 신청 몰리기도

은행권이 인공지능(AI) 기술 확대를 계기로 디지털 전환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개발을 중심으로 한 무형자산 투자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AI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은행권의 전략적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다.
2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컴퓨터소프트웨어·시스템개발비 등 무형자산 규모는 총 1조6292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조3697억 원) 대비 18.94% 증가한 수치로 역대 최대 규모다.
무형자산은 물리적인 형태는 없지만 향후 경영상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자산으로 분류된다. 은행권의 경우 주로 전산 시스템, 소프트웨어 개발비와 같은 전산 인프라 투자가 포함된다.
은행들이 디지털 전환에 집중하는 배경에는 비대면 금융거래 확산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 입출금 거래 중 인터넷뱅킹이 차지하는 비중은 84.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스마트폰이나 PC를 통해 금융거래를 하는 것이다. 은행으로서는 디지털 경쟁력 강화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은행권은 AI 챗봇, 비대면 대출 시스템, 자동화 자산관리, 고객 응대 자동화 등 다양한 분야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안정적인 시스템과 축적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전산 인프라가 핵심이다. 한국신용정보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권의 AI 시장 규모는 2021년 6000억 원으로 연평균 38.2% 성장해 2026년 약 3조2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의 전산 투자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AI 활용을 위한 규제 완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위원회는 금융회사 내부망과 외부망을 물리적으로 분리해야 하는 ‘망 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생성형 AI 도입을 유도하고 있다. AI 기반 금융 플랫폼 개발과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 구축이 한층 수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가 지난 3월 진행한 1분기 혁신금융서비스 모집에 신청 접수된 199건 중 125건(62%)이 생성형 AI 활용을 위한 망 분리 규제 특례에 몰렸다. 5대 은행도 망 분리 특례 제도를 활용해 금융상담용 챗GPT, 고객 응대 시스템, 내부 리스크관리 자동화 서비스 등을 개발 중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망 분리 완화 조치 이후 서비스 기획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며 “기술 혁신을 위해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