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율은 분야마다 다르고 수시로 바뀌지만, 중요한 것은 양국이 서로의 핵심 산업을 정조준하며 무역 정책을 무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세를 넘어 수출 통제, 수입 금지, 기술 차단까지 다양한 방식이 총동원되고 있으며, 상황은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협상 가능성보다 대결 구도가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이제 이 갈등은 단순한 상품 교역을 넘어, 산업과 기술 패권을 둘러싼 ‘산업전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바이오 등 전략 산업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으며,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의 기술 접근을 봉쇄하려 한다.
특히 반도체 장비 부문에서, 미국은 네덜란드·일본과 협조해 EUV·DUV 노광 장비 수출을 사실상 차단했고, 엔비디아의 고성능 AI칩도 점점 더 제한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희토류·핵심 소재 수출을 통제하고, ‘중국제조 2025’를 기반으로 기술 자립과 공급망 독립을 서두르고 있다.
미중 대결은 공급망 장악력과 미래 산업 주도권을 둘러싼 구조적 충돌로 전환됐다. 바이든 행정부 시기 추진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은 자국 산업 보호와 기술 유치를 목표로 했고, 트럼프 재집권 이후 이 기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미국은 반도체·배터리 제조기지의 자국 내 유치를 장려하고, 수출 규제와 관세를 결합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은 대체 시장을 모색하고, 동남아·중동·러시아 등과 무역 루트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핵심 산업의 국산화를 가속하고 있다.
이러한 대결은 글로벌 공급망을 흔들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과 중국 모두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갈등이 격화될수록 더욱 큰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의 AI 반도체 수출 규제로 중국 공장 운영에 제약을 받고 있으며, 장비 반입에 대한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반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처럼 미국 생산기지를 확보한 기업은 IRA에 따른 인센티브를 누리며 반사이익을 보고 있다.
이처럼 산업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한국은 단순한 ‘균형 외교’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섰다. 산업 전략과 외교 전략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한다.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지금, 한국은 보다 능동적인 전략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산업 다변화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가 시급하다. 특히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은 품목은 선제적으로 대체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 확대와 국제 공동개발 네트워크 강화가 필요하다. 단순히 투자금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민간과 공공의 유기적 협업이 전제되어야 한다.
셋째, 반도체·배터리·AI 등 전략 산업에 대한 정책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중요하다. 기업이 안정적으로 투자하고, 정부는 산업 외교를 통해 기술 동맹을 실질화해야 한다. 특히 기술 안보가 국가 안보로 직결되는 시대에, 정부는 기술 주권 확보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실행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관세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21세기 글로벌 질서와 산업 구조를 좌우하는 전면적 경쟁이다. 이 거대한 싸움에서 한국이 어떤 산업과 기술에 전략적 무게를 둘지는,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세운 전략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빠른 시일 내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국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세워 급변하는 세계 무역질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