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합판매가 유료방송 황폐화시켜
제살깎는 저가경쟁 반복 벗어나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을 빼고 자국 영화 비중이 50% 넘는 유일한 나라라고 자부했던 한국 영화산업이 급추락하고 있다. 작년 대한극장을 비롯해 16개 영화관이 문을 닫은 흐름이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2024년 극장업계 매출은 코로나 이전인 2017~2019년 평균 1조8288억 원의 65.3%이고, 전체 관객 수도 55.7%로 떨어졌다. 세계 최상위권이었던 1인당 연간 관람 횟수도 2.4회로 세계 8위 수준이다.
영화시장 추락 원인이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미디어 패권이 온라인 매체로 옮겨가면서 거의 모든 매체들이 심각한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어쩌면 사실상 경쟁을 포기한 상태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듯싶다. 말 그대로 OTT 서비스가 미디어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OTT 공세에 밀려 위기에 처해 있는 방송과 영화는 그 성격이 다르다. 우선 두 매체는 재원구조에서 차이가 있다. 방송은 수용자들이 지불하는 시청료보다 광고 같은 간접 재원에 크게 의존한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의 관람료에 의존하는 대표적 유료형 매체다. 그러므로 본질적으로 영화는 방송과 달리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저가 경쟁을 벌일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의 급속한 몰락 주범으로 저가 관람료가 지목되고 있다는 것은 의외다. 이른바 ‘객단가’ 문제다. 객단가란 “매출액을 관객 수로 나눈 수치로, 1인당 평균 이용 요금”을 말한다. 전체 영화 관람료에서 각종 할인 및 통신사 마일리지 혜택 등을 제외하고 관람객이 지불한 금액이다. 이 객단가는 최종적으로 영화 투자사와 제작사의 수익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낮은 객단가는 영화 제작 시장에 투입되는 재원 감소로 이어져 영화산업 토대를 약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영화산업은 외형적 호황을 견인해 왔던 통신사 할인 같은 저가 요금 구조가 부메랑 효과를 맞고 있는 것이다. 마치 이동통신과 인터넷 서비스, 다채널 유료방송을 묶어 가입자를 유치하는 ‘결합판매’가 유료방송시장을 황폐화시킨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처럼 저가 시장이 제작 기반을 위축시켜 글로벌 OTT들의 자본 공세에 백기를 든 것도 비슷하다. 결합판매로 인한 유료방송 수신료 가격 할인은 콘텐츠 제작사에 지불되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감소시켰고, 그 결과 글로벌 OTT들에 제작시장을 빼앗겼다. 멀티플렉스 영화관들도 코로나로 인한 관람객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과도한 이동통신 할인 경쟁을 벌였고, 그것은 결국 영화 투자사나 제작자에게 돌아가는 재원을 압박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주도하는 한국 영화산업이 ‘팝콘 판매를 위한 영화서비스’라는 비아냥 소리를 들었던 이유다. 유료방송이 ‘이동통신 가입자 유치를 위한 미끼상품’이라는 비판과 똑같다.
문제는 이처럼 저가 체제에 돌입하게 되면 가격 인하 경쟁이 가속화된다는 것이다. 전체 관람료의 40% 수준이었던 객단가가 30%대로 낮아졌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방송이나 영화가 글로벌 OTT들에 맥없이 붕괴되는 근본 원인은 기술적 약점보다 방송·영화 시장을 주도해 온 플랫폼사업자들이 수익을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 형성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작비 지원이나 펀드 같은 단발성 직접 지원은 밑 빠진 독이 될 수밖에 없다.
누군가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을 모색하면 된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국 시장에서 경쟁력 없는 미디어 상품은 해외 시장에서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오래전이지만 1992년 미국 상무부가 작성한 ‘매스미디어의 세계화(Globalization of Mass Media)’라는 보고서에서 “글로벌화란 (미국의) 기업들이 국내에서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해, 여기서 얻어진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추가의 경제적 이윤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