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후보를 낼 자격

입력 2025-04-09 06: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올해 정치부 기자로서 가장 비참했던 순간을 말하라면 3월 27일을 꼽겠다. 그날 서울 광화문 앞에 쪼그려 앉아 '윤석열·김건희 100대 비리'를 검증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의 엄포를 기계처럼 받아 써 내렸다. 최악의 대형산불로 누군가의 터전, 크고 작은 생명이 불타 잿가루가 되어가던 때였다.

"화마에 사람이 죽었는데…." 싶으면서도 목구멍까지 올라온 질문들을 입 밖으로 내뱉진 못했다. 민주당 천막 당사를 왜 경남 산청 산불 현장이 아닌 광화문에 펼쳤냐고, 김 여사 논문 표절 의혹 보다 당장 몇 배는 더 시급한 일이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묻지 못했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반성의 의미로 국회에 계류 중인 산불 대책 법안을 쭉 훑어봤다. 산불 진화대원들의 진입로를 확충하고, 노후화된 산불 헬기를 교체하는 방안 등 국회 차원에서 논의해볼 만한 법안이 수두룩하다. 그럼에도 산청에서 시작된 산불이 전국 곳곳을 불태우고 꺼지기까지 국회는 단 한차례도 법안 심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정치권을 가득 메운 건 '연쇄 탄핵', '승복 압박', '예비비 논란' 같은 서로를 메어치는 논쟁들이었다.

조기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치권 한쪽에선 '정권을 빼앗길세라', 다른 한쪽에선 '권력을 되찾아오려고' 혈안이다. 그래서일까. 강동구에 지름 20m의 거대 싱크홀이 발생했는데도 두 거대 정당은 상대 수장을 강요죄로 고발한다거나 정권의 '알박기 인사' 의혹을 파헤치는 일에 집중했다. 미래세대를 위한 기후특위 출범은 기약 없이 늦어지는데, 173페이지 분량의 '이재명 망언집'이나 윤 전 대통령·가족 의혹 100가지를 정리한 '비리 백서'는 뚝딱 잘도 만들어졌다.

"무슨 염치로 대선 후보를 낼 생각을 하는가." 최근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향해 일갈했다. 공감한다.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들이미는 정권을 배출한 정당은 입이 백 개여도 할 말이 없어야 한다. 자격 미달이다. 그런데 역으로도 한 번 묻고 싶다. 국민이 죽고 다칠 때 민주당도 다수 의석을 가진 공당으로서 본연의 책무를 성실히 수행했는지 말이다. 한 점 부끄럼 없이 후보를 낼 수 있는 정당이 현존한다 말할 수 있을까.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트럼프 시대 동남아 어디로] 갈피 못 잡는 기업들…IPO·공장건설 연기도
  • 단독 탄핵 직전 최상목에…"사퇴 말고 탄핵 당하라"
  • ‘대선'보다는 '당권'에 관심? [후보와 세끼]
  • 청년대출·소상공인전문은행…금융 때리는 표심 계산기 [표밭 다지는 정치금융]
  • 기술의 K디스플레이, 프리미엄 IT 기기 파트너로 부상
  • '데이식스', 피날레서 각인한 이름 네 글자 [종합]
  • 후보들, 첫 토론 평가...이재명 "더 연구", 김문수·이준석 '李 비난'
  • R&D 투자 늘리는 방산 빅4, 미래기술 선점 박차
  • 오늘의 상승종목

  • 05.19 10:30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49,224,000
    • +1.76%
    • 이더리움
    • 3,454,000
    • -1.85%
    • 비트코인 캐시
    • 566,500
    • +1.34%
    • 리플
    • 3,392
    • +1.34%
    • 솔라나
    • 238,200
    • +0.51%
    • 에이다
    • 1,054
    • +0.19%
    • 이오스
    • 1,128
    • -0.97%
    • 트론
    • 375
    • -2.6%
    • 스텔라루멘
    • 409
    • +0.49%
    • 비트코인에스브이
    • 51,450
    • +2.9%
    • 체인링크
    • 21,920
    • +0.74%
    • 샌드박스
    • 446
    • +4.4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