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깨달음’에 관한 단상

입력 2025-03-1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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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님,언제쯤 제 마음속 괴로움이 씻은 듯이 사라질까요?” “……” “잔물결조차 없는 거울같이 맑은 호수가 되고 싶어요.” “제가 명색이 정신과 의사인데, 지금 제 마음은 어떨 것 같으세요?” “저보다야 평안하시지 않을까요.” “저도 요사이 고민되는 일이 있다보니, 연일 높고 거센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에요. 어제는 심지어 잠도 잘 못자고요.”

순간 그는 잠시 놀라는 듯 했지만, 곧 공감과 납득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이천오백여 년 전에 북인도의 싯다르타는 젊어서부터 ‘생로병사’라는 인간의 한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며 지냈어요. 모친이 그를 낳은 후 곧 돌아가셨기 때문일까요. 그에게 인생은 곧‘고(苦)’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그가 출가 후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후, 열반에 이르렀다고 해요.” “……” “저는 청소년기에 온갖 번민에 시달렸던지라,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으면,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사라지고, 환희와 평안이 가득한 마음을 갖게 되는 줄 알고, 열심히 불교 서적을 탐독한 적도 있었어요.” “그래서, 해답을 찾으셨나요?” “네, 최근에 찾은 것 같습니다.” “정말이세요?” “……” “궁금해요. 뭔지 말씀 좀.”

책상에 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이 있었다. 투명한 컵안에 얼음과 커피,빨대가 보였다.

“보세요. 이 차가운 얼음이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 그 속에 담긴 빨대가 인간이라고 해보죠. 예전엔, 깨달음을 얻으면, 이 얼음물에서 탈출하는 능력을 얻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게 해탈 즉 열반 아닌가요?” “저도 그런 줄만 알았었요. 그런데,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린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결코 이 얼음물을 빠져 나갈 수 없지요. 그러므로, 이 차가운 세계를 탈출하려 버둥대며 생을 허비하지 말고, 우리 생이 차가운 얼음물인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수용하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제 해석이 마음에 드시는지요?”

편안한 표정과 눈빛으로 인사하고,진료실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차가운 커피를 한모금 들이켰다.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원래 차가워야 제맛이지.’

이런 생각과 함께 아늑한 한기가 온몸에 퍼지는 것을 기분좋게 받아들였다.

최영훈 일산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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