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미쉐린 스타'의 그늘(?) [이슈크래커]

입력 2024-10-02 17:07 수정 2024-10-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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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출처=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일상 곳곳에서 '흑백요리사'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2일 넷플릭스 톱10 웹사이트에 따르면 '흑백요리사'는 지난달 23일부터 29일까지 490만 시청 수(시청 시간을 작품의 총 러닝 타임으로 나눈 값)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물론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 4개국 1위를 포함해 총 28개국 톱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지난달 17일 공개 이후 2주 연속으로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비영어) 부문 1위라는 쾌거를 달성했죠.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받는 재야의 고수 '흑수저' 셰프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들에게 도전장을 내밀며 치열하게 맞붙는 100인의 요리 계급 전쟁을 그립니다.

넷플릭스 자본을 체감할 수 있는 세트장과 방방곡곡의 고수, 세계적인 이름값을 자랑하는 셰프, 파격적인 미션, 요리를 향한 열정과 진심,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우면서도 의지를 북돋는 심사가 한 그릇에 어우러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흑백요리사'의 돌풍으로 함께 주목받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미쉐린'(미슐랭)인데요. 미쉐린 스타를 받은 셰프를 향해 감탄의 눈빛을 보내는 셰프들의 모습이 '흑백요리사'에 담기기도 했죠. 미쉐린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도 그 눈빛에서 '동경'을 읽은 만큼, 미쉐린이 미식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체감했을 겁니다.

다만 미쉐린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대단하냐'는 회의적인 시선부터 선정 방식 논란 등 적지 않은 꼬리표가 따라붙는 것도 사실이죠.

▲(출처=미쉐린 홈페이지 캡처)
▲(출처=미쉐린 홈페이지 캡처)

미쉐린, 타이어 회사라고?…여행안내 책자에서 시작된 '맛집 평가서'

미쉐린 스타는 뛰어난 식당에 부여되는 별점을 말합니다. 별 3개인 '쓰리 스타'는 음식의 맛과 서비스, 청결 상태 등을 보장하는 최고의 식당이라는 말로 통용되죠. 그만큼 이 별점이 미식업계에서 권위가 높다는 건데요. 이 별점을 매기는 건 다름 아닌 '타이어 회사'입니다.

비벤덤(Bibendum), 이름은 낯설어도 타이어를 겹겹이 쌓아 사람 형태로 만든 캐릭터의 모습은 친숙합니다. 마시멜로를 연상케 하는 캐릭터로 유명한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은 1900년부터 타이어 구매 고객에게 자동차 여행안내 책자를 무료로 배포했는데요. 당시는 프랑스에 자동차가 3000대밖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도로 환경은 물론 여행 정보까지 열악한 상황에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 여러 정보를 담은 책자를 만들어 전달한 겁니다.

초기엔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법부터 도로 법규, 자동차 정비 요령, 주유소 위치, 호텔 등 단순 정보가 담겼습니다. 그런데 주목을 받았던 건 회사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던 '식당' 섹션이었죠.

미쉐린은 1922년부터는 책자를 유료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1926년에는 음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한 호텔에 '스타'를 붙였습니다. 이게 숙박시설과 식당 정보를 제공하는 '레드 가이드'의 시초였죠.

사람들이 맛집 정보를 원한다는 걸 주목한 미쉐린은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에 별점을 매기기 시작했습니다. 평가원을 고용해 무작위로, 몰래 식당을 방문하고 맛, 서비스, 청결 상태 등을 평가하게 했죠. 별 하나인 원 스타부터 쓰리 스타까지, 총 세 단계로 이뤄진 지금의 시스템이 도입된 건 1936년입니다. 별 하나는 '요리가 훌륭한 레스토랑', 두 개는 '요리가 훌륭해 멀리 찾아갈 만한 레스토랑', 세 개는 '요리가 매우 훌륭해 맛을 보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떠날 가치가 있는 곳'을 의미하는데요.

평가 방식은 미쉐린 가이드 측 평가원이 불특정 다수의 레스토랑을 불시에 점검, 심사해서 그들만의 엄격한 방식으로 채점한 뒤 별점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만 방문하는 게 아니라 1년간 5~6번 각기 다른 평가원이 방문하고, 별점 3개가 부여되는 데 '만장일치'가 나와야 하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세부적인 평가 항목에는 '요리 재료의 수준', '요리법과 풍미에 대한 완성도', '개성과 창의성', '가격에 합당한 가치', '전체 메뉴의 통일성과 언제 방문해도 변함없는 일관성' 등이 포함된다고 하는데요. 어떻게 별을 받아내도 끝이 아닙니다. 재심사도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데다가, 예전만큼의 음식을 선보이지 못하면 얄짤(?) 없이 별을 없애버리죠. 반대로 더 높은 별점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별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가격에 훌륭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은 빕 구르망으로 분류합니다. '합리적인 가격'의 기준은 국가별로, 또 도시별로 다른데요. 올해 서울의 경우 평균 4만5000원 이하 가격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들을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합니다.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공식 스틸컷. (사진제공=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몰려드는 손님에 부담, 공정성엔 의문…제국주의 비판까지?

엄격한 선정 방식을 거쳐 별을 주는 데다 받은 별도 마냥 영원한 게 아닌 미쉐린 가이드. 이렇다 보니 미쉐린 스타 1개만으로 가게의 매출이 평생 보장받는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흑백요리사'만 봐도 이를 체감합니다. 현재 한국의 유일한 쓰리 스타 식당, 안성재의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모수'는 잠정 휴업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온라인상에서는 식당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습니다. 한 유튜버가 지난해 3월 업로드한 모수 후기 영상은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아 2일 기준 32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습니다. "'흑백요리사' 보고 오신 분?"이라는 댓글은 1만5000개의 '좋아요'를 받았죠.

그러나 폭증하는 관심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지난달 영국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런던대 경영학과 대니얼 샌즈 교수는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뉴욕에 개업한 식당 중 뉴욕타임스(NYT) 미식란에 소개된 가게들의 업황을 조사해 발표했습니다. 연구 결과 2019년 기준 이들 가게 가운데 별을 받은 식당의 10개 중 4개꼴인 40%가 문을 닫은 것으로 나타났죠. 입지나 가격, 음식 종류 등을 고려해 분석을 진행했을 때도 폐업률에서 유의미한 변화는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미슐랭 별을 받은 식당의 경우 대중성은 올라가지만 그만큼 손님들의 기대치가 올라가 비용 상승에 부담을 느낀다는 건데요. 매체는 이를 '별의 저주'로 일컬었죠.

유명 애니메이션 '라따뚜이'(2007)에서는 최연소로 별점 5개를 받았던 셰프 '구스토'가 평론가의 혹평으로 별점 하나를 잃고 실의에 빠져 지내다 세상을 떠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실제로 2003년 프랑스에서 쓰리 스타 레스토랑의 셰프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바 있는데요. 당시 세간에는 미쉐린이 그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평점을 깎을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셰프는 식당을 확장하기 위해 은행에서 큰돈을 대출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안타까움을 더한 건 그의 사망으로부터 나흘 뒤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에서 그의 레스토랑이 여전한 '별 3개'를 받았다는 겁니다.

별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미쉐린 스타를 거부하는 셰프도 나타났습니다. 프랑스 유명 셰프 세바스티앙 브라스는 2017년 "이듬해부터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내 식당을 빼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1999년 별점 3개를 받은 후 거의 20년간 줄곧 최고 등급을 유지해왔는데요. 미쉐린 평가에서 최고 평가를 받은 프랑스 요리사 27명 중 한 명이기도 했죠.

브라스는 페이스북을 통해 "1999년 레스토랑이 미슐랭에서 별 3개를 얻은 뒤 말 못할 압박에 시달려 왔다"며 "'평가의 세계'에서 벗어나 요리를 하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평가에서 제외되면 덜 유명해지겠지만 받아들일 것"이라며 "내 창작품(음식)이 평가단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지 신경 쓰지 않고 훌륭한 음식을 만들겠다"고도 부연했죠.

미쉐린 스타를, 그것도 쓰리 스타를 거부한 건 이례적이었는데요. 미쉐린도 당황했습니다. 클레어 도랑 클로젤 미슐랭 집행위원회 위원은 "결정을 존중한다"면서도 "일방적 요구로 미슐랭 평가에서 자동 제외되는 것은 아니며 합당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고 했죠. 그의 식당은 2018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에서 제외됐습니다. 그러나 별점을 안 매기기엔 너무 맛있었던 걸까요? 브라스의 식당은 2019년 가이드에 다시 별 2개를 달고 등장해 놀라움을 자아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2020 미쉐린 가이드 서울에 전년도보다 낮은 등급으로 등재된 식당 리스토란테 에오의 셰프 어윤권은 미쉐린 측을 모욕죄로 고소했습니다. CNN 등에 따르면 그가 소송을 제기한 건 별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명확한 심사 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매체 권위를 이용해 맘대로 등급을 매기고, 자신의 식당을 제외해달라는 요청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미쉐린의 평가가 공정성을 보증할 수 없다는 지적은 많았습니다. 이탈리아 요리사 괄티에로 마르케시도 쓰리 스타 세프였지만, 2008년 미쉐린 가이드 평가 시스템을 비판하며 별을 거부하고 나섰죠.

한국에서는 폭로도 나왔는데요. 고급 한식 레스토랑 윤가명가의 윤경숙 대표는 2019년 미쉐린 브로커로부터 컨설팅 비용을 요구받았고, 이를 거부하자 미쉐린 가이드 등재가 취소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미쉐린 측은 "자체적으로 내사를 벌였지만 미쉐린 직원들은 논란과 어떠한 여관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해명한 바 있죠.

미쉐린 가이드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사실 음식의 맛을 등급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인 데다가, 그 등급의 기준이 되는 게 서양인의 입맛이라는 게 차별적이라는 겁니다. 영국 가디언은 "미쉐린 가이드의 주요 목적은 문화제국주의의 도구"라고 일갈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제공=당근)
▲(사진제공=당근)

'흑백요리사' 인기에 국내 요식업계 훈풍…식당 정보 확인 어디서?

다만 '흑백요리사'의 대흥행으로 국내 요식업계 전반엔 훈풍이 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파인다이닝은 '흑백요리사' 공개 1주 만에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서 예약 증가율이 직전 주보다 150% 뛰었습니다. 백수저 셰프를 이긴 재야의 고수는 물론, 강력한 우승 후보자들, 이미 탈락한 출연자들의 식당에도 주문 문의가 빗발쳤죠.

파인다이닝, 오마카세(맡김 차림) 등 고급 식당은 코로나19 팬데믹 때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인기를 누렸는데요. 높은 물가와 경기 침체로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도 변화했고 외식 소비도 위축됐습니다. 고가의 메뉴를 준비하는 파인다이닝 대신 주목받은 건 가성비로 승부하는 맛집들이었죠.

이 같은 상황에서 벼락같이 등장한 '흑백요리사'로 관련 업계는 파인다이닝의 부활도 조심스레 점치고 있습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파인다이닝 키워드 검색량은 지난해 9월 29일 대비 올해 같은 날 33배가 뛰었습니다.

이들 식당에 대한 검색 빈도가 치솟자, 포털 사이트들도 발맞춰 식당 리스트를 준비했습니다. 네이버는 출연진의 식당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 서비스 안에 '흑백요리사 출연 셰프 식당 리스트'를 신설했는데요. 네이버 지도를 통해 곧바로 예약할 수 있도록 별도의 페이지도 개설했죠. 카카오가 운영하는 카카오맵도 '흑백요리사 식당'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했고요.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은 자체 숏폼 서비스 '당근 스토리'를 통해 '흑백요리사' 출연 식당 정보를 한곳에 모아 보여주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서울 지역에서 운영 중인 당근 스토리의 '흑백요리사' 큐레이션에서는 인기 프로그램 속 셰프들의 식당에 방문한 이용자의 솔직한 리뷰 영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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